급변하는 세계정세와 국가정보의 중요성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1-03 10: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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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 전 부산지부장

지금의 국제현실은 급성장한 경제력에 힘을 받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의 틀을 허물기 위해 남중국해 등에서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블 랙스완(black swan) 대통령’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세계가 힘과 리더십이 분산된 멀티플렉스 월드(Multiplex World)로 변할 것’임을 알리는 봉수대라고 볼 수 있다.


냉전 붕괴 직후 베를린 장벽과 사회주의국가들이 붕괴하고, 국가 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국제주의와 자유무역의 확대는 일상화된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침공과 같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온다는 낙관적 견해를 확산시켰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현실은 “국가 간의 차별적인 성장이 기존 패권국과 신흥국 간의 패권경쟁으로 이어져 국제질서를 불안하게 하거나, 심지어 전쟁까지 유발한다”는 ‘국가 간 불균등 성장법칙’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급성장한 경제력에 힘을 받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의 틀을 허물기 위해 남중국해 등에서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인민일보 2016년 12월 8일자 오피니언 기고문에서는 중국의 이런 속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은 반드시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안정적인 국제질서의 이념적 토대로 작용했던 ‘국제주의’가 퇴색하고, 개별 국가들의 국익을 우선하는 ‘국가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2017년 세계는 분간하기 힘든 안개지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이버 공간 또한 ‘새로운 분쟁 공간(a new theater of conflict)’으로 부상하면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복합적 안보위험’ 가능성을 더 한층 높여준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90억 개의 기기들은 효율성을 배가시키는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사이버공간의 취약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각국 간의 사이버 무기경쟁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해킹으로 상징되는 사이버첩보활동은 중국의 ‘사이버안보법’ 제정이 실증하듯,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외국 거대 IT기업의 진출을 제어하는 ‘사이버 보호주의(cyberprotectionism)’로 나아갈 조짐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세계경제가 저성장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그리고 로봇 산업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격차 확대와 노동력의 위기를 심화시켜, 전 지구적으로 ‘불평등 · 불안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동북아의 안보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북핵을 빌미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가속화함과 동시에 핵무기 현대화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미국은 향후 30년 동안 1조달러를 투입하여 오하이오급 잠수함을 대체하는 탄도미사일 탑재 차세대 핵잠수함과 신형 장거리 원격핵 순항미사일 및 북한의 지하터널이나 땅굴을 정밀 타격 가능한 초정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26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중국은 2차 핵타격 능력을 보강하기 위해 액체연료 중심의 미사일을 고체연료 미사일로 교체하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핵미사일의 다탄두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위협수준도 평가절하하면서, 오히려 한국 내 사드배치 반대에 외교력을 집중함으로써 한국 안보를 이중적으로 침해하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도 핵 현대화 프로그램을 가동, 전통적인 핵강대국 지위복귀를 노리는 한편 미국과 유럽의 리더십 교체기회를 이용해 우즈베키스탄·몰도바와 같은 구소련 연방국들과 우호적 관계 회복을 통해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한때 앙숙이었던 중국과의 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북한의 핵위협과 중국의 핵억지력이 증가하고, 미국의 동북아 동맹국에 대한 방위공약이 약화된다면, 자신의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 제조시설을 이용하여 잠재 핵능력을 현재화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핵무기 1,00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40톤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도 핵능력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핵동결(또는 핵실험 중단)을 조건으로 미 · 북 직접대화를 모색하는 등 모두가 변화된 전략환경에 맞추어 국익 극대화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수치스러운 사태까지 자초하여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주위를 둘러싼 ‘스트롱 맨’들이 자국의 이익 추구를 기조로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전개하는 한편으로 미국(트럼프), 중국(시진핑), 러시아(푸틴), 일본(아베) 등이 탄탄한 국내 지지를 바탕으로 강성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는데도, 한국은 어떤 장기적인 전략과 방법론으로 주변국을 상대하려는지 명확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강대국 정치와 안보 우선 정치로 요약되는 ‘신냉전’ 조짐은 한국이 얼음판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특히 ‘예측불가능성이 외교정책의 핵심’이라는 트럼프의 공언은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정보는 예측을 생명으로 한다. 남들이 모두 아는 내용은 정보일 수 없다. 성냥불을 보고 산불로 번질지를 예측하는 견기이작(見機而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에 정보원이 갖춰야 할 몇 가지 덕목에 대해 알아본다.


첫째, 정보 및 안보기관 종사자들의 유연한 사고가 첫 번째 갖춰져야 할 덕목이다. 우리의 뇌는 보수성이 강하다. 기존의 것을 고집하고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전략적 분석의 갭(strategic analysis gap)’을 극복해야 한다. 정보기관들이 틀릴 것을 염려해 장기적인 분석을 기피하고 현재적인 정보 즉 현용 정보에 매달리는 현상이다. CIA가 2000년에 예측한 2015년의 국제정세 변화전망 중에서 “러시아가 일어나지 못할 것이고,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란 예측 등이 오류로 판명 났다. 국가정보기관은 이에 대한 예측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는 안목 즉, 대관세찰(大觀細察)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국가정보기관은 네비게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들에게 현 위치와 앞으로 가는 방향을 혼동 없이 알려주는 총체적 조타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가리더십의 공백 상태를 헌신적으로 메울 수 있는 조직은 국가정보기관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정세의 변화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이 오늘의 연장선상이라는 사고방식, 울타리에 갇힌 근시안, 실패를 두려워하는 비관주의는 반드시 버려야 할 요소다.


‘윗사람을 기쁘게 하는 정보’(intelligence to appease)만 수집하고 보고하려는 행태 또한 국정파
행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글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 전 부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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