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마지막 ‘민주화운동’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6-08 15: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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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본지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동학(東學)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의 사상은 신분차등의 양반사회를 부정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 속에 한울님을 모신 존귀한 인격’이라고 여기는 ‘시천주(侍天主)’ 정신에 뿌리를 둔다. 민족자주.인간존중.만민평등을 바탕으로 한 수운의 민본주의 사상은 그가 순교한 후 갖은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나날이 번창하여 갑오동학혁명에서 3.1 독립운동에 이르는 우리나라 근대민족사의 정신적 주류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4.19혁명’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으로 꼽는데 인색한 사람은 없다. 그 이후 신군부정권의 탄생을 막아서려고 나섰다가 엄청난 피를 흘린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군부정권 장기집권 음모를 보다 못해 들고 일어선 1986년 ‘6.10민주항쟁’ 등이 우리들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굵직한 민주화운동의 역사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 유례없이 드라마틱해

민주화는 흔히 ‘자유화(liberalization)’, ‘민주화(democratization)’, ‘사회화(socialization)’ 등 3단계로 진전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자유화’는 권리를 재규정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곧 국가나 정당들에 의해 범해지는 자의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로부터 사회집단들 및 개인들을 보호하는 효과적이고 확실한 권리를 수립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자유화’는 모든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던 시대의 구각을 부수는 첫 단계다.


두 번째인 ‘민주화’는 강압적 통제, 사회적 전통, 전문가 견해 혹은 행정적 실행 등 이전에 통치되던 정치제도들에 대해 시민권의 규칙과 절차들이 적용되는 과정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권리와 의무는 그 동안 함께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로 확장된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참여가 차단됐던 쟁점 및 제도들에 대해 모든 시민의 참여가 망라되도록 확대되는 의미 있는 과정이 도입된다.


전국 지자체장 다 나서도 중앙정부 과장 하나 꿈적 안 해
세 번째 ‘사회화’는 시민의 권리가 다른 사적인 사회제도들을 망라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기회 평등과 함께 실질적인 이익의 평등이 획득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회화는 독립적이지만 상호 연관되어 있는 이중적 흐름, 곧 사회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를 포함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로 구분한다면,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는 전자에, 세 번째 단계는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이기로 한 것은 문 대통령은 물론 지난 대선기간 유력 후보들이 굳게 한 약속이다. 이제 정말 ‘지방분권형 개헌안’이 추진될 것인지가 중대한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중앙집권적’으로 고착화된 우리 정치행정의 경직된 구조는 참으로 심각하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 모두가 나서서 달려들어도 중앙부처 과장 하나 꿈쩍 안 할 만큼 ‘중앙정부 중심주의’는 완고한 게 사실이다.

‘지방분권형 국정경영체제 구축’ 반드시 선행돼야
지방자치 현장에서 보면, 중앙의 부처나 사업추진기구들이 마련한 지시적 정책이 난마처럼 얽혀서 지역의 자생력과 성장력을 억압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하향식의 일률적인 사업 추진 패턴으로는 재정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고, 지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제 청와대나 중앙부처는 비전(vision) 설정 기능만 맡고, 구체적 사업은 규모의 경제를 갖춘 지역 단위에서 입안하고 추진하는 방식을 취할 시점이 됐다. 


새 정부의 자치와 분권 및 균형을 위한 지역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상당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이른바 지방분권형 국정경영체제의 구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중앙정부조직과 관료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방법으로 공무원들을 틀어쥐고 편안하게 정권을 유지해오던 습성부터 털어내야 한다. 이 과업을 가장 확실하게 견인하는 일은 다름 아닌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 작업을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하는 것이다. 


진정한 국민통합 위해 국정운영 틀.방식 근본적 개조 필요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진통 끝에 처리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가 출범 21일 만에 총리 인준절차를 마무리한 가운데 이 신임총리에 대한 지역민들의 기대는 남다르다. 전남도지사를 역임한 만큼, 이 총리가 시대에 뒤떨어진 중앙집권주의를 말끔히 청산하고 모범적인 지방분권국가로 발돋움하는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하기를 한마음으로 희망하고 있다. 


지방분권국가를 실현하는 길은 결코 녹록치 않다. 제아무리 온 지역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급변하는 중앙정치 이슈에 한번 묻히기 시작하면 관심이 금세 실종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선진적인 ‘지방분권국가’로의 탈바꿈 과업은 이제 문재인 정부의 지엄한 사명이다.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와 분권 강화를 중심으로 하는 국정운영의 틀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선진적 ‘지방분권국가’ 건설해야 ‘실질적 민주주의’ 완성
선진적인 ‘지방분권국가’ 건설은 우리가 걸머진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사명이다. 그것은 시대의 혁명사상가 수운 최제우가 신봉한 ‘시천주(侍天主)’ 정신을 일관한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군부정권에 맞서 피를 흘린 5.18,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 세상을 바꾼 6월 항쟁, 그리고 국정농단을 향해 끈질기게 ‘아니다’라고 외친 광화문 촛불시위 정신을 관통한다. 마지막 민주화 운동인 ‘실질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소중한 단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참다운 ‘지방분권국가’ 구축을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두 개의 큰 난관이 있다. 지방공무원들의 고착화된 ‘패배주의’가 그 첫 번째 해결과제다. 이젠 부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선입관을 온전히 거두어들여야 할 때다. 다음은 중앙관료들의 기득권의식이 빚어내는 궤변이다. 중앙정부 관료들은 ‘지방분권’ 이야기만 나오면 으레 “지방은 아직 능력이 안 된다”는 불가사유를 앵무새처럼 거듭한다. 숱하게 해왔던 말이지만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또렷이 되묻는다. “자식들 무릎 깨지는 것이 두려워 그 댁에서는 아예 아기들에게 걸음마를 시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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