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국민들의 ‘눈물 값’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6-21 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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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국회가 멈춰 서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이 당분간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에 불참키로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의 후폭풍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참고용’이라고 망발하는 청와대의 태도에 여야 정치인 모두 뿔이 잔뜩 났다. 그래도, 걸핏하면 ‘파업·태업’을 일삼는 국회의 악습은 지겹다. 국회의 주인은 국민이다. 대체 국민이 뭘 잘못했다고 법안 생산라인을 멈춰 세울 것인가.
국민이 뭘 잘못했다고 법안 생산라인 멈춰 세우나
국회 운영위원회 소집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인사청문회 절차를 위한 각 상임위원회가 파행을 지속하고 있다. 야권이 국회 일정 보이콧을 이어가면서 운영위는 여야 간에 고성과 막말로 얼룩졌고, 국토교통위원회.국방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이 일제히 공전이다. 운영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고함과 삿대질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고, 정우택 위원장은 난장판을 수습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우리 국회의 ‘비생산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각 상임위원회별 법안심사위원회 개최일수는 놀랍게도 1년에 평균 10.4일밖에 안 된다. 불과 하루 몇 시간 동안 무려 19건의 법안심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졸속입법으로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던 이른바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마저도 의원들의 심사는 단 두 번에 그쳤다. 이러니 국회의원들의 이미지는 ‘놀고먹는 고관대작’ 범주를 두고두고 벗어나지 못한다.
전문위원에게 검토보고 맡기고 방망이 치는 입법 말 안 돼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를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에게 맡기는 제도는 다른 나라 의회에는 없다. 대표성을 위임받지 않은 일반 시민인 전문위원이 위원회에서 국회의원과 동등한 구성요소가 된다는 것은 전혀 타당치 않다. 정쟁에 골몰하느라고 법안을 제대로 읽어볼 시간조차 없는 국회의원들이 국회 소속 공무원인 전문위원에게 검토보고를 맡기고 ‘축조심의한 것으로 치자’며 얼렁뚱땅 방망이 두드리는 ‘입법’이라니 도대체 말이 되는가.
부의된 법안들을 입법관료들이 검토하는 우리와 달리 독일과 프랑스 등은 상임위 의원들이 직접 법안들을 꼼꼼하게 검토한다. 독일은 경우에 따라 4독회와 5독회까지 이어가면서 의견을 교환한다. 프랑스 의회 역시 본회의든 상임위원회든 발언을 포함한 모든 진행을 의원들이 직접 수행한다. 한 수 아래의 정치문화 수준이라고 치부되는 타이완의 의회 입법원의 입법과정도 우리의 경우보다 훨씬 성실하게 수행된다.
미국 국회의원들 바쁜 일정에 ‘매점 샌드위치 점심’ 일쑤
미국 유권자들은 현안에 대한 찬반을 기준으로 다음 선거에서 의원들을 심판한다. 따라서 국회 본회의장의 투표를 알리는 벨소리는 본관을 비롯해 각 의원사무실과 의회도서관 등 의회 내 기관 모든 곳에서 울리고, 의원들은 신속하게 본회의장으로 이동한다. 일정이 복잡한 의원의 경우에는 10분마다 회의나 모임이 있어 매우 분주하게 의사당 주변을 오가야 한다.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많고 매점에서 샌드위치로 때우기도 한다.
미국 의회의 상임위원회 전문 인력은 정당에 소속되는 18명의 스태프를 포함해 위원회 당 평균 68명이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소속 의원 수에 비례해 인원을 배정받고 소수당은 최소 1/3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책 전문 인력은 소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에 대해 연구, 조사 및 분석 업무를 수행하여 그 결과를 구두 또는 서면으로 위원장 및 간사 또는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게 보고한다.
독일 국회의원들, 치열한 소그룹 토론으로 전문성 향상
독일 의회의 경우, 각 분야의 최고 엘리트들로 구성된 교섭단체 정책위원과 의원들이 함께 소그룹에서 줄기차게 토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의원들은 각 정당의 정책 연구위원들과 매주 한번 소그룹 회의를 진행해 짧게는 6주에서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상임위 의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조율한다. 의원 개개인과 각 정당의 전문성은 동시에 증대된다. 독일에서 국회의원 노릇하기란 정말 고되다. 그들이 수행하는 정책업무는 엄청난 노동강도를 요구한다.
한국정치판에서도 선거에서 선출된 자는 유권자들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그 행위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령 위임(Imperatives Mandat)’은 철저히 폐기되고, 오직 유권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자유 위임(Freies Mandat)’만이 판을 치고 있다. 그야말로 ‘대의정치의 위기’다. 의무는 방기되고 특권만 날로 늘어나고 있다. 국회 청문회에서 검증 문턱을 넘지 못한 의원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는 ‘의원불패’ 신화마저 회자된다.
빌미 만드는 정부여당, ‘보이콧’ 관성 야당 모두 각성해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는 균형과 견제라는 3권 분립을 통해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입법 거수기’로 간주됐던 ‘제왕적 대통령’ 시대를 청산하라는 것이 ‘촛불시위’로 드러난 지엄한 민의다. 정국운영에 무한책임이 부여된 정부여당이 집권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날에 국회를 자극해 운영을 중단시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국회가 건듯하면 의사일정을 거부하는 고질병은 지겨운 폐습이다. 불비(不備)한 법 때문에 울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를 이렇게 멈춰 서게 해서는 안 된다. 상임위를 상시로 가동해 밤잠을 설쳐가며 입법 생산성을 높여도 시원찮을 판이다. 빌미를 만드는 정부여당도, ‘보이콧’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야당도 모두 각성해야 한다. 국민들의 ‘눈물 값’으로 이득을 탐하는 몰염치한 정치가 무슨 소용 있나. ‘버릇 고치라니까 과부 집 문고리 빼들고 엿장수 부르는’ 꼴인 이 못된 ‘국민 머슴’들을 대체 어찌해야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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