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7-26 17: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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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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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최적의 삶을 보장하는 스웨덴의 복지체제 구축은 1928년 사민당 당수 한손(Per Albin Hansson)이 전당대회에서 발표한 ‘국민의 가정(folkhem)’이라는 신조어에서 출발한다. ‘국민의 가정’은 모든 이에게 안락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자 하는 ‘포괄적 복지’ 개념의 함축적 표현이다. 이 정책을 중심으로 1950~1960년대에 ‘황금의 스웨덴 복지국가’를 건설한 사람은 재무상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였다.
‘증세’ 이슈 정치권 전반 활발한 논의 시작 ‘긍정적’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의 작심발언 모양새로 시작된 ‘증세’ 논의가 확산일로다. ‘증세’는 정치권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만큼 기피대상이었다. ‘증세’ 이슈가 일단 정치권 전반에서 활발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정치적 셈법 안에 갇히기 시작하면 희망이 없다. 정부의 예산운용을 과감하게 절감하면서 ‘보편적 증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나가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을 우려한 나머지 “증세 대상은 임기 내내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곧바로 종래의 ‘부자증세’ 주장 재탕으로 이해되면서 논쟁을 증폭시켰다. 정부·여당의 제안에 담긴 ‘핀셋 증세’는 연 2조9천300억원의 세수 증대 효과밖에 없기 때문에 연 35조6천억원이라는 소요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는 ‘법인세 인하’ 추세…왜 거꾸로 가야하는지 설명돼야
‘부자증세’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영국은 법인세율을 2020년까지 17%로 낮추기로 했고, 일본도 23%로 낮춘 법인세율을 더 내리기로 했다. 프랑스 마크롱정부도 강력한 법인세 인하를 추진 중이다. 일본은 245%의 국가부채를 감수하면서도 끝내 소득세 증세를 포기했다. 그리스는 법인세를 6%포인트 올렸다가 오히려 4.2%의 총세수 감소에 직면했다.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들은 20~25%의 부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부자 증세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다른 나라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에 불을 붙일 리 만무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하는지, 우리는 왜 거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글로벌경제’ 시대에 ‘자본’에는 애국심이 없다. 기업 해외탈출(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전깃줄에 앉은 다섯 마리 참새 중 하나를 쏘면 몇 마리가 남겠느냐’는 난센스 질문에 ‘네 마리가 남는다’는 바보 답변이 왜 아직도 유효할 것인가.
납세 대상자 절반 세금 한 푼도 안 내는 게 더 문제
조세재정연구원은 법인세를 1%포인트 올릴 때 경제성장이 1.13% 하락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법인세율을 3%포인트 올리면 경제활력 감소로 세수가 되레 2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이 법인세를 35%에서 15%로 낮추는 상황과 맞물려 우리나라는 2026년까지 연평균 국내총생산(GDP)은 5.4%, 투자는 14.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로 인해 일자리는 무려 연간 38만2천개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낮은 것은 부자들이 덜 내기 때문이 아니라, 납세 대상자의 절반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2015년 기준 개인의 44%, 기업도 무려 47%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2012년 소득 기준으로 면세자 비율이 한국에서 48%에 육박할 때 미국은 32.9%, 호주는 23%, 독일이 19.8%, 일본은 15.8%였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정치가 유권자인 납세 대상자를 부패시켜왔다는 비판은 일리가 있다.
진보, ‘부자증세’만을 해법 삼는 ‘복지 논리’ 과감히 수정돼야
‘부자증세’를 외치기 전에 방만한 공약 구조조정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공무원을 늘려가면서 증세를 하자는 것도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씀씀이를 줄이면서 국민들을 위한 보편적 복지의 범위를 넓혀 “좀 더 많이 내면 국가가 모두 책임진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순리다. 표심이탈이 두려워 어림 턱도 없는 ‘부자증세’만을 해법으로 외쳐온 진보진영의 ‘보편적 복지’ 이론의 모순을 과감히 수정할 때가 왔다.
‘증세’는 합리적이고 신중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신기루다. 실세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재정 당국을 압박하는 방법으로는 끝내 불가능한 목표다. 국민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민생을 보장해주는 이상적인 국가를 원한다. 그 순박한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당국의 솔직한 정책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의 결정에 국민들은 결코 승복하지 않는다.
‘중(中)부담 중(中)복지’ 목표로 정직하게 ‘보편적 증세’ 호소해야
지난 대선에서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이 지난해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일갈한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된 대한민국정치사를 뒤바꾼 하나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중(中)부담 중(中)복지’를 목표로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보편적 증세’를 호소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유효하다. 우리는 ‘덜 내고 누추하게 살 것’이냐, ‘더 내고 명예롭게 살 것’이냐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쟁하고 결단해야 할 때가 됐다.
2009년 7월 스톡홀름을 떠나면서, 나는 수첩에다가 ‘스웨덴은 국가가 아니다. 거대한 보험회사다. 우리는 국가의 존재가치와 기능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다다랐다’고 적었다. 사회공동체로서 국가는 구성원이자 주인인 국민들이 함께 기여하고 누려가는 ‘국민의 가정(folkhem)’이어야 한다. 국가는 이제 국민모두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기여하거나, 아이들이나 노인들처럼 누리는데 애로사항이 없는 가정처럼 존재해야 한다. 드디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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