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달리는 ‘폭탄트럭’의 비밀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11-09 15: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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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지난 2008년 2월 10일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을 지른 방화범 채종기 씨가 70고개를 바라보는 노인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최근 한 방송에 나와서 채 씨가 지난 2006년 창경궁 문정전에도 불을 지른 전과자였다는 점을 밝혀 놀라움을 더했다. 당시 많은 언론들이 고령이면서 체력은 강하지만 정신건강이 온전치 못한 노인들의 문제를 많이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자동차 10대가 완전히 불에 타 3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지난 2일 경남 창원터널 앞 화물차 폭발 사고를 계기로 또 다시 열악한 화물트럭 운전환경에 대한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그 동안 이미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된 바 있는 화물트럭 운전환경은 사고가 나면 잠시 시끌벅적하다가 잊어버리고 마는 악순환이 거듭돼왔다. 철저한 단속과 트럭기사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는 비극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트럭기사들 노동환경 달라지지 않는 한 위험성 제거 어려워
경찰에 따르면 이번에 사고를 일으킨 5t트럭은 화물적재 법적 허용치인 차량 무게의 110%(5.5t)를 훌쩍 초과한 7.8t의 유류를 싣고 운행했다. 폭발 가능성이 높은 유류를 드럼통처럼 작은 용기에 나눠 실을 경우 여기에 대한 마땅한 제재규정이 없다. 창원터널 사고차량처럼 신고하지 않고 트럭에 허술하게 싣고 다녀도 통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화물차 운전사가 ‘화물운송자격’도 없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놀라움이 더해지고 있다.
트럭기사들이 상시적으로 과적을 일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금이라도 짐을 더 실으면 그만큼 수당을 더 받을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다. 트럭기사들의 과적 문제는 곧바로 수입과 연계돼있어 근절시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화물트럭 과적은 관행적으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고 과적을 단속하는 구간도 있으나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트럭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달라지지 않는 한 위험성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 5년 만에 80% 급증
장시간 노동도 사고율을 높이는 주된 원인이다. 한국교통연구원 화물운송시장정보센터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일반화물 운전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323.7시간이었다. 개별화물 운전자는 279시간, 용달화물 운전자는 257.5시간이었다. 일반노동자 월평균 180.7시간과 비교하면 많게는 120시간, 적게는 52시간이나 더 일하는 셈이다. 장시간 노동 역시 결국 지나치게 낮은 수입과 관련이 있다.
2014년 기준 일반화물 노동자의 월 순수입은 239만원, 개별화물은 187만원, 용달화물은 96만원이었다. 이는 일반노동자 평균 임금의 56% 수준에 불과하다. 화물차 기사 자격에는 법적인 연령 제한이 없어 사각지대에서 고령 운전자가 내는 교통사고는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2011년 1만3천596건에서 지난해 2만4천429건으로 5년 만에 80% 급증했다.
‘젊은 노인’ 늘면서 노인범죄 강력화·흉포화 경향 두드러져
고령사회의 가속화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노인 범죄’의 양상을 보면 더욱 심각하다. 신체적으로 젊고 건강한 노인들이 정서적으로 소외되고 빈곤을 겪으며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찰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만 61세 이상 노인 범죄는 2012년 말 12만5천12건에서 2015년 말 17만904건으로 36.7%나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범죄가 2.8%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큰 폭 상승이다.
‘젊은 노인’ 인구가 늘면서 범죄가 강력화·흉포화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2011년 말과 비교해 2015년 말 기준 성폭력은 102.8%나 급증했다. 방화 75.3%, 마약 62.2%, 폭력 53.5%, 살인 29.8% 등으로 증가율이 매우 높다. 재범률이 높다는 점도 특징이다. 2015년 말 기준 노인 강력범죄의 재범자 비중은 56.5%에 달한다.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는 노인 범죄자의 경우 출소 뒤 교도소 생활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 차별 안 되지만, 타인생명 위협 상황 방치할 수는 없어
현행법상 주로 화물차를 운행하는 지입 차주(개인 소유의 차량을 운수회사의 명의로 등록하고 영업)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정년이 없고 면허만 있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어 고령자가 몰리는 추세다. 위험 물질 운반에도 정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위험물 운송 자격은 운전면허 소지자가 소방청 산하 소방안전협회에서 이틀간 총 16시간의 교육만 받으면 100% 부여된다. 이 때문에 경찰도 과적에 대해 과태료 처분만 고려할 따름이다.
버스 회사에서는 대개 만 59세까지로 정년 기준을 둔다. 정년이 만 70세인 회사택시와는 달리 개인택시는 정년이 없다. 지난해 서울 택시기사 중 51%인 4만3천429명이 60세 이상이었다. 70세 이상도 8천137명으로 9.5%에 달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령화 문제가 어느새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그러나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달리는 ‘폭탄트럭’의 비밀 풀어낼 열쇠 서둘러 찾아내야
일본은 2013년부터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자진 반납하는 운전자에게는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 요금을 할인해준다. 70세가 정년인 싱가포르 택시 운전기사들은 50세부터 2년마다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75세 이상의 운전면허 적성검사 주기를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운수업 운전자는 인지 기능 검사를 포함한 교통안전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76세 고령이었던 창원터널 유조차 폭발 사고 운전자는 올해 들어서만 5번, 지난 2006년부터 운수업을 시작한 이래 무려 46건의 교통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다. 대형사고 위험이 높은 운전자들이 운전하는 화물트럭이 상시적으로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오싹하다. 과적을 할 수밖에 없고, 과로운전을 피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집중력과 신체 반응속도가 떨어지는 노인들까지 화물트럭을 숱하게 운행하는 위험천만한 환경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달리는 ‘폭탄트럭’의 비밀을 풀어낼 열쇠를 서둘러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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