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플라스틱, 인류를 역습하다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10-16 00: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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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인류의 역사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면 현대는 ‘플라스틱시대’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제품들은 모두 플라스틱 기술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패턴 해상도를 가지는 반도체 소자, 얇고 화려한 색감의 LCD와 유기EL 디스플레이, 고성능 2차 전지, 초극세사와 기능성 섬유, 자동차 내장재 등은 모두 플라스틱 기술의 진화 덕분에 가능해진 첨단 발명품들이다. 

 

플라스틱의 역사는 스위스 바젤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독일인 크리스티안 쇤바인(Christian Schönbein)이 1846년에 성공한 질산섬유소(니트로셀룰로오스) 합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후 천연수지 플라스틱 셀룰로이드, 베이클라이트, 폴리에틸렌의 발견을 거쳤다. 20세기 후반 고기능성 플라스틱의 개발 속도가 더욱 가속화돼, 일본의 히데키 시라카와 등은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을 개발해 2000년 노벨화학상을 받기도 했다. 

 

20세기 기적의 플라스틱, 한경오염 최대 골칫거리로 부상

 

20세기 기적의 소재 플라스틱이 환경오염의 최대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이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며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민주당 김현권 국회의원은 최근 확보한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연구보고서를 분석해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육지에서 사용되고 버려진 플라스틱은 낙동강과 한강 등 전국 강 하구에 집중돼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은 지난해 경남 진해·거제의 양식장과 인근 해역에서 굴·담치·게·지렁이 4종을 잡아 내장과 배설물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139개체 중 97%(135개체)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동물성 플랑크톤을 미세플라스틱이 담긴 수조에 넣고 40일 동안 관찰했더니 생존율이 떨어지고 성장이 늦었다. 먹이사슬의 맨 아래 단계에서부터 수상한 일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국 18개 해안 미세플라스틱 검출량 외국보다 많아

 

보고서에서는 다른 어류의 소화기관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관측됐다는 설명도 포함돼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종전 조사(2012~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진해·거제 해역의 미세플라스틱 양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해역을 포함, 전국 18개 해안에서 모두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고 검출량 또한 외국의 경우보다 많았다.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이 독을 품고 인간을 세차게 기습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갖가지 형태로 우리 생활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죽음의 알갱이’ 또는 ‘바다의 암적인 존재’라고 불리는 미세플라스틱은 자체 생산되거나 기존 제품이 조각이 나면서 미세화돼 크기가 5㎜ 이하가 된 합성 고분자화합물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치약, 세정제, 스크럽 등에 포함돼 있는데, 150ml 제품에 대략 280만 개의 미세플라스틱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게 되리란 끔찍한 예측도 

 

‘마이크로비드(Microbead)’로 불리는 아주 작은 플라스틱은 더욱 치명적이다. 시판되는 제품에 함유된 마이크로비드는 주로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지며,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 나일론으로도 만들어진다. 마이크로비드는 크기가 1mm보다 작은 플라스틱이다. 이렇게 작은 마이크로비드는 정수처리 과정에서조차 걸러지지 않고 하수구를 통해 강으로, 바다로 스며든다. 

 

2015년 여름 일본 도쿄에서 잡은 멸치 64마리 중 49마리의 체내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 연구사례도 있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는 알바트로스, 갈매기, 펭귄 등 42개 속 186종의 바닷새들의 먹이 행태 및 해양 플라스틱 관련 자료를 종합하고 분석해, 2050년이 되면 모든 바닷새의 99.8%가 플라스틱을 먹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게 되리란 끔찍한 예측도 있다. 

 

미세플라스틱 위해 방지하려는 외국의 발걸음 한발 앞서 

 

미세플라스틱은 인간의 체내에 흡수되면 장폐색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 할당을 감소시키거나 성장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신·수유 여성의 경우 꽁치·고등어 같은 일반적인 어류는 일주일에 400g이하, 먹이사슬 상위 단계에 속하는 참치 등 심해성 어류는 100g이하로 먹고, 유아는 일주일에 어류를 100g이하로 먹되 심해어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미세플라스틱 위해를 방지하려는 외국의 발걸음이 한발 앞서 간다. 미국은 2015년 ‘마이크로비즈 청정해역 법안’으로 물로 씻어내는 제품에 미세플라스틱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으며, 스웨덴도 화장품에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7월부터 미세플라스틱을 화장품에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했고, 해양수산부는 미세플라스틱 환경영향 정밀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2020년에 발표할 예정이다. 

 

해양에 투기되는 플라스틱에 대한 강력한 조치부터 필요

 

싼 가격,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에 더해 플라스틱이 가진 놀라운 특성 중 하나는 영속성(永續性)이다. 플라스틱은 분해되거나 녹슬지 않는다.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모든 플라스틱은 지구 어딘가에 계속 존재한다.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분해성 플라스틱’이나 ‘천연 소재 기반의 플라스틱’ 개발은 앞으로 플라스틱 기술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거벼이 여기고 함부로 써온, 인류의 생활을 완전히 뒤바꾼 최고의 발명품 플라스틱의 반란이 무섭다. 무심코 쓰고 버린 플라스틱이 치명적인 독이 되어 무서운 재앙을 품고 빠른 속도로 인간을 역습하고 있다. 해양 연안 전반에 대한 오염현황 파악과 세밀한 대책이 시급하다. 특히 해양에 투기되는 플라스틱에 대한 강력한 조치부터 필요하다. 조금만 더 늦으면 아주 늦을 수도 있다. 플라스틱의 해악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대안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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