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숙의민주주의’에 관한 단상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10-26 12: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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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플라톤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영혼이 ‘사물을 판단하는 이성’,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개’, ‘사지로부터 분출되는 욕구’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세 가지가 기능을 다하며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특히 세 가지 영혼 중 어느 특정한 영혼의 부분에 충실하여야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계급을 세 등분으로 구분한다.

 

플라톤은 지혜를 가진 철학자가 통치를 하고, 용기를 가진 자는 용기를 내어 적을 방어하는 가운데, 욕구를 가진 자는 욕망을 절제하여 생산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를 통치하는 철학자는 지혜를 닦기 위한 어렵고 혹독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이데아 중 최고의 가치인 ‘선의 이데아’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이런 개념을 통해서 정리된다.  


靑, 주요공약 꺾였지만 ‘탈(脫)원전’ 동력 확보 안도 분위기

 

신고리5·6호기 공사가 재개 수순을 밟게 됐다.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가 89일 간의 논의 끝에 정부에 공사를 재개할 것을 권고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최종 여론조사에서 ‘건설 재개’ 쪽을 선택한 비율은 59.5%로서 ‘건설 중단’ 쪽을 선택한 비율 40.5%보다 19% 포인트 높았다. 공론화위는 아울러 원전 축소 53.2%, 유지 35.5%, 확대 9.7%로 나온 공론조사 결과도 함께 내놨다. 

 

의아스럽게도 청와대가 앞장서서 호들갑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론화위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공론조사를 “감동적인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이 모델을 다른 사회갈등 현안에 적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감동’ 언급은 ‘원전축소’ 의견이 과반을 넘었다는 대목에 방점이 찍혀있는 듯했다. 주요공약 하나가 꺾였지만, ‘탈(脫)원전’은 동력을 확보했다는 분위기다.  

 

공론화위원회의 ‘원전 축소’ 권고 놓고 ‘월권’ 논란 점증 

 

문제는 공론화위의 결과 발표 이후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현실이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월권’ 지적에 대해서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출범 당시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에만 국한했던 공론화위원회가 향후 원전을 축소하라는 권고까지 낸 것에 관한 비판과 반론이 거세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도 이 문제에 대해 명백하게 말을 뒤집었다.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조정실과 산업통상자원부의 합동 브리핑에서 홍 실장은 “이번 공론조사는 중단과 재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찬반 양측의 의견이 충분히 보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상생적 차원에서 의견수렴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번 공론화 작업은 신고리 5·6호기에 국한된 작업이고 건설공사 중단 여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던 본인의 지난 7월 발언과 정확하게 배치된다. 

 

정치권에 ‘숙의민주주의’ 개념 또 하나의 화두로 등장

 

비판자들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명칭 그대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계속 여부에 관한 공론을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위원회일 뿐이지 ‘탈(脫)원전’ 정책 전반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권한이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비전문가 471명 중 탈(脫)원전을 지지한 사람이 40명 정도 많은 과반수(53.2%)라는 사실만을 근거로 국가 경제와 안보에 직격탄이 될 수도 있는 국가정책을 성급하게 결정할 수 있는가를 반문한다. 

 

우리 정치권에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라는 개념이 강력한 또 하나의 화두로 던져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선택한 우리나라의 국회가 끝 모를 정쟁에 휩쓸려 제 역할을 해오지 못한 얼룩진 정치사는 길고도 복잡하다. 그 끝에서 대통령마저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 같은 새 길을 언급하고 있는 현실은 착잡한 일이다. 행정수반이 저래서는 안 된다는 비판과 국회가 얼마나 구제불능이면 저럴 것이냐는 공감이 교차한다.  


국회, 해결능력 상실한 이빨 빠진 사자들의 으름장만 무성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국회는 도무지 진정한 수치심이 없다. 청와대가 국민지지를 등에 업고 입법부의 권능을 잇달아 깔아뭉개고 있는데도 마땅한 반성과 처신은 아랑곳없이 고리타분한 갑질 권위주의 행태만 거듭하고 있다. 예민한 국가적 이슈에 대한 해결능력을 상실한 이빨 빠진 사자들의 메아리 없는 으름장만 무성하다. 국회가 권력을 탐하는 세력들의 별천지 씨름판으로 온존하는 한 개선의 여지는 희박해 보인다. 

 

걱정스럽다. 입법·사법·행정 3권이 올곧게 따로서지 못한 얼치기 민주주의국가에 살고 있다는 현실이 새록새록 서글퍼지는 나날에 민초들의 걱정과 의심은 늘어만 간다. 대통령의 무리한 공약 하나를 고치기 위해 천문학적 재정이 낭비돼야 하고, 수많은 지역민들이 피폐위기에 떨어야 하는 게 이 나라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다시 유권자에게 ‘외주’를 줘서 해결해야만 하는 현실이 허탈하다.  

 

‘중우정치’ 차단하려던 플라톤의 ‘철인정치’ 교훈 자꾸만 떠올라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시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멋있는 이벤트였다. 웬만한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낼 ‘탈핵’ 선언을 용감하게 했으니 참 멋있는 무대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뚜껑 열고 보니 친환경에너지 대체정책이란 것은 씨도 안 먹힐 탁상공론이고, 원전 수출전선에는 강력한 ‘자살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많은 이들이 우리 원전산업의 미래를 비관한다. ‘탈(脫)원전’ 선언으로 ‘원전 수출’ 기회를 차버리는 정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묻고 싶다. 앞으로도 약속을 뒤집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라는 이름의 용렬한 수단을 정말 계속 동원할 참인가. 국회는 왜 ‘숙의민주주의’라는 심층적인 해법의 본산이 되지 못하고 다툼질만 거듭하는가. 현대정치의 가치관에 전혀 닿지 않긴 하지만, 최소한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비극을 차단하고자 했던 플라톤의 ‘철인정치’ 교훈이 자꾸만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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