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저격수 정치’의 추억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5-31 15: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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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본지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정치권에서 일컬어지는 아이러니컬한 현상 중에 ‘부메랑’이라는 것이 있다. 권력을 장악한 쪽이 힘을 남용하여 지지른 일이 나중에 화근이 되기도 하고, 야당이 집권세력을 향해 그악한 투쟁을 일삼다가 권력을 잡고 난 뒤 앙갚음을 당하는 경우를 일러 ‘부메랑 정국’이라고 부른다. ‘부메랑 현상’은 우리 정치사에서 비일비재하다. 스타트라인을 막 떠난 문재인 정부가 인사검증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악한 투쟁 일삼다가 앙갚음 당하는 경우 비일비재
여론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인기’는 대단히 중요한 성공요소다. 매스컴에서 인기를 폭발시키는 것은 지명도를 높이는 첩경으로 통한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아 순식간에 정치 요인(要人)으로 부각되는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하다. ‘국회 청문회’는 무명의 정치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노리는 ‘원맨쇼’ 무대다. 거의 생중계로 전국에 방영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에게는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국무총리를 필두로 국무위원들의 인사청문회 장마당이 곧장 열린다. 정치인들은 이 기회를 놓칠 새라 앞 다투어 ‘투사’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채비를 하고 달려든다. 청문회장은 그야말로 ‘폭로정치’의 막장이 되고, 창과 방패의 살벌하고도 뜨거운 격전장으로 돌변한다. 의기양양 ‘스타’로 부각되는 영웅과 반쯤 죽어나자빠지는 희생양들이 즐비하게 나타나는 격투가 펼쳐지곤 한다.
청문회장, ‘폭로정치’의 막장 돼 뜨거운 격전장 돌변 일쑤
새 정부 첫 재상으로 지명된 이낙연 총리후보자를 비롯한 주요 고위직 내정자들이 줄줄이 ‘위장전입’ 전력(前歷) 때문에 진땀을 빼고 있다. 문 대통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콕 집어 천명한 병역면탈·부동산투기·세금탈루·위장전입·논문표절 관련자 등 소위 공직임명 ‘5대 불가사유’가 족쇄가 됐다. 인사 청문 대상 고위공직 예정자들의 낙마(馬) 퍼레이드는 으레 일어나는 참사여서 아주 예견되지 못한 일은 아니다.
정권이 출범하고 난 뒤 야당의 고약한 ‘태클정치’에 걸려 만신창이가 된 정치인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김종필이다. ‘DJP(김대중ㆍ김종필) 연대’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5·16 쿠데타 주도 전력과 도덕성 등을 트집 잡아 김 후보자의 임명 동의를 악착같이 반대했다. 엄혹한 ‘IMF 위기’ 속에서 김종필 총리 인준안은 6개월이나 표류했다.
새 정부 출범마다 ‘분란 자초-극한투쟁’ 악순환 빚어져
2003년 노무현 정부 조각(組閣) 때는 한나라당이 대북송금 특검법과 고건 총리 인준을 사실상 연계하는 바람에 큰 진통을 겪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때는 야당인 통합민주당이 한승수 초대 총리후보자에 대해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등 각종 의혹을 제기해 인준 처리에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야당은 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강부자’(강남 땅부자) 논란을 부각시키면서 대선 대패(大敗)의 충격에서 벗어났다.
박근혜 정부 조각 때도 야당은 김용준 초대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고위공직 후보자들을 잇달아 낙마시키면서 전열을 정비해갔다. 박근혜 정부 때는 7명의 총리 후보자 가운데 무려 3명이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고, 1명은 아예 청문회까지 가보지도 못 했다. 이처럼 새 정부가 출범할 적마다 집권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재등용을 못해서 분란을 자초하고, 야당은 극한투쟁으로 정치적 위상을 추스르는 악순환을 아주 끊어낼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집권당-야당 모두 과거 묵살하고 ‘딴 소리’…초라한 ‘위선’
야당 시절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인사 때마다 비리 ‘4종 세트’니 ‘5종 세트’ 니 하며 고위공직 내정자를 낙마시키는데 혈안이 됐던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는 것은 초라한 위선이다. 여당 시절 공직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의혹 제기를 ‘정권 발목잡기’라고 맹비난하던 자유한국당이 공직후보자들의 의혹을 모두다 ‘중대 결격사유’로 뻥튀기하는 것 또한 민망한 자기모순이다.
인사청문회를 놓고 여야가 하염없이 지지고 볶는 정치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을 더 생각하는 자세에서 해법을 찾아나야 한다. 공수(攻守) 입장이 바뀌었다고 안면몰수하고 정반대의 주장과 논리를 펴며 충돌하는 낯 두꺼운 모습을 더 이상 국민 앞에 노출해선 안 된다. 몰염치한 ‘부메랑 정국’의 한복판에서 민심은 썩어 나자빠지고 있다. 이렇게 멈칫거리는 국정으로 인해 막심한 피해를 보는 쪽은 늘 무고한 국민들인 탓이다.
청와대·여야 정치권, 사회적 합의 만들고 ‘예외’ 차단해야
인사청문회는 미국이 230년 전인 1787년 헌법제정의회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의회 인준권을 규정하면서 세계에서 맨 처음 시작됐다. 부적격자를 완벽하게 걸러내는 백악관의 사전검증 시스템 덕분에 미국에서는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인사가 드물다. 한국은 2000년 6월에 인사청문회제도를 도입했으니 이제 17년이다. 그렇더라도 험악한 ‘태클정치’의 사냥터로 변질된 우리나라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야권이 낯간지러운 유치한 ‘저격수 정치’ 추억의 포로로 남아있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식으로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몰염치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마주 앉아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정국을 원만하게 풀어갈 협치(協治)의 틀을 다지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인사기준을 만들되, 더 이상 한 치도 예외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청와대는, 밑돌을 비뚜름하게 놓고 그냥 돌을 쌓아 가면 그 공사는 반드시 위태로운 부실공사가 된다는 엄중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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