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여진 半백세에 告하는 '참회록'

김영호 기자 | kyh3628@hanmail.net | 입력 2016-11-25 0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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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호 부국장
새벽녘 덤프트럭 기사의 짜증스런 경적소리에 단잠을 설친 탓에 먼동이 훤히 밝았건만 쉽사리 이부자리룰 박차고 나오질 못했다. 

 

이런 꼬락서니가 몹시 못마땅했던지 아내는 평소보다 더 시끄럽게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로 유난을 떠는가하면 제트기 굉음을 내는 낡은 청소기를 이리저리 돌려대며 성가심을 피운다.

 

그 다음에 이어질 잔소리 수순을 불 보듯 뻔히 알기에 아예 주섬주섬 옷을 걸쳐입고 아침운동을 빌미삼아 게슴츠레한 몰골로 집 현관 문을 나섰다.

 

하지만 버스 혹은 지하철을 타느라 연신 총총거리며 걸어가는 젊은 청춘들과 맞닥뜨리자 웬지모를 죄스러움에 슬그머니 동네 뒷산으로 쭈빗쭈빗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어느덧 다가온 초겨울 바람이 "게을러 터진 백수어른께서 어쩐 일이시냐" 며 소스라치듯 나의 뺨을 사정없이 때린다.

 

나름 호기롭게 나선 발걸음이었건만 젊음을 술과 담배로 탕진한 댓가와 맞바꾼 저질 체력탓에 결국 30분 이상의 행군을 못견디고 동네어귀에 있는 공원내 벤치에 걸터앉아 부질없는 상념에 젖는 선에서 그만 타협하고 만다.


공원 여기저기에 하릴없이 널부러진 각종 빈병과 과자 봉투 등은 어제밤의 찬란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말해주는 듯하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본격적인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이미 떨구어진 가을 낙엽은 마치 산업화와 민주화의 달콤함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채 명예퇴직이라는 미명아래 갑자기 내팽개쳐져야 했던 우리네 베이비부머세대들의 성급함과 잔망스러움이 묘하게 닮아있다.

 

따뜻함이 묻어나는 중년부부들의 산책데이트는 부러움을 넘어 끝없는 질투의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그들을 억지로 외면하고 아침 공원풍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70대 이상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으로 눈길을 옮기고서야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지팡이와 유모차에 의지한 채 졸망거리는 그들의 산책은 비록 활기띤 모양새는 갖췄으나 삶의 생동감보다는 패배주의의 또다른 초상쯤으로 평가절하되면서 나를 근거없는 자신감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더욱이 허접하기 짝이 없는 공원체육시설내 운동기구에 마치 매미처럼 달라붙어 건강과 생명을 구걸하는듯한 처연한 삶의 몸짓은 나를 또한번 망령된 상상속으로 몰아 넣는다.

 

"젊은 시절에 아무런 대책없이 나태하게 살아온 댓가로 저런 노후를 맞았으리라" "난 결단코 저런 참담한 노년을 맞지 않으리라"는 근거없는 착각 속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에 감사가 넘치는듯한 그들만의 아침수다를 옆에서 듣고있노라면 웬지 서글픔보다는 어쩌면 불과 몇 년 뒤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동류의식에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이와 때를 같이해 내 앞을 지나가던 30대 중반쯤 돼보이는 젋은이의 따가운 시선이 순간 나를 움찔거리게 만든다.

 

그놈의 눈은 분명코 "50대 초반에 얼마나 능력이 없었으면 벌써 회사에서 내쫒겨나 아침부터 하릴없이 동네 구석구석을 쏘다니는 한심한 쓰레기신세로구먼" "나도 나중에 저런 볼썽사나운 백수는 되지 말아야지"라는 비아냥을 흩뿌리며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하!~. 숱한 젊음의 시간을 철저하게 허랑방탕하게 탕진해놓고 이제 반백(半白)의 인생지간에 정녕 그 누구를 탓하고, 그 무엇을 원망한단 말인가.

 

어차피인생의 의미'때늦은 한탄과 후회로 점철될 뿐일진대 지난간 시간을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있으리오.

 

이제 백세시대를 맞아 나머지 절반의 인생 만큼은 회한에 사무친 '참회록'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순간 땅바닥에 나뒹굴던 빈 소주병이 벌떡 일어나 내게로 날아왔다.

 

그 순간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직도 3년 전의 '백수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못난 자아를 쥐어박으며 가슴을 쓸어내린뒤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로 달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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