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사냥개’ 목줄 놓기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8-01-05 11: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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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세가와병이라는 희귀질병이 있다. 원래 병명은 도파 반응성 근육긴장이상(Dopa-Responsive Dystonia DRD)’인데 1976년 일본 소아과 의사 마사야 세가와등에 의해 처음 보고된 이후 세가와병이라고 부르게 됐다. 대부분 10세 이전의 소아 연령에서 발현되는 이 병은 발()의 근육긴장 이상으로 증상이 시작된다.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 이상으로 도파민 생성이 감소해 발생한다고 한다.

 

지난 126일 대구지법 민사11(신안재 부장판사)는 대구시내의 한 대학병원에 원고 A씨에게 1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 대학병원에서 소아마비(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13년을 병상에서 보낸 A씨는 뒤늦게 서울의 한 대학병원 물리치료사의 발견으로 세가와병이라는 병명을 찾아내고는 도파민 투여로 이틀 만에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한 병원의 오진(誤診) 때문에 무려 13년 동안이나 허망한 고생을 한 끝이었다.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방안정치권 새로운 쟁점 떠올라

 

질병에 대한 오진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는지는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환자를 진료하는데 있어서 병명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달 역시 첨단과학기술을 응용해 병인(病因), 병소(病巢)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진단 기술의 비약적 발전의 결과물이다. 자고새면 또 다른 진단 기술이 세상에 나타나 죽을 사람들을 기적처럼 살려내곤 한다.

 

문제가 쌓인 조직을 혁신시키는 일 역시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똑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최근 청와대가 발표한 검찰·경찰·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혁방안이 정치권 논란을 격화시키는 등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당은 폐단을 없애고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위한 통제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호응한다. 그러나 야당은 청와대가 국회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며 반발한다.

 

야당들, 줄줄이 나서서 청와대의 발표내용과 형식 문제 삼아

 

청와대가 밝힌 개혁안 중 검찰부문은 신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 고위공직자 수사를 넘기고 특수수사를 제외한 직접수사를 축소하는 것이 골자다. 국정원은 국내정치와 대공수사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대북·해외 정보수집 기능만 전담하는 기관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과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관으로 권한이 비대해질 경찰은 안보수사처 신설과 자치경찰제 전면 도입, 수사·행정경찰 분리를 통해 권력을 분산한다는 내용이다.

 

야당들이 줄줄이 나서서 청와대 발표의 내용과 형식을 문제 삼아 비토 분위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먼저 발끈하고 나섰다. 국회사법개혁위원회(사개특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 가이드라인 제시는 사개특위를 무력화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맹비판했다. 김용태 혁신위원장은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에 대해 남영동 대공분실을 다시 만들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업무를 뗐다 붙였다하는 기능조정이 최우선과제아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청와대가 인사권으로 권력을 장악해 권력의 하수인으로 삼는 게 핵심인데, 인사권 개혁방안이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안을 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청와대가 아닌 국회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발표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야당의 초당적 협조를 당부했다.

 

권력기관 개혁은 국민들이 오랫동안 관심을 표시해온 분야인 만큼 혁신 추진의 명분은 충분하다. 공수처만 하더라도 여론조사에서 줄곧 국민들의 기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여야 정치권이 무작정 미룰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개혁방안은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있다. 몰라서 그러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사법기관을 늘리고, 업무를 뗐다 붙였다하는 방식의 기능조정을 최우선과제로 삼는 것은 치명적인 오진(誤診)의 결과물이다.

 

독립성.공정성 담보가 핵심칼자루 잡고 나서 변심하는 게 문제

 

권력기관 개혁은 사정기관이 정권의 사냥개 노릇에 매달리는 구조를 깨기 위해 어떻게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정도(正道). ‘청와대 하명수사에만 죽어라고 매달리는 사정기관 풍토를 그냥 둔 채로 권력기관 개혁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또한 재벌들과 법조인들이 이해관계에 함께 얽혀들어 유착하는 전근대적인 구조를 덮어둔 채로 권력기관 선진화는 어림 턱도 없는 공염불이다.

 

기마 욕솔노(騎馬 欲率奴)’라는 말이 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정도로 해석된다. 우리 정치사에서 권력기관을 혁신할 수 있는 기회는 무수히 많았다. 최고 권력자의 의지만 올곧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숙제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칼자루를 잡고 나니 생각이 바뀐 것이다. 뒷간 다녀오고 나서 마음이 변한 것이다. 거머쥔 사냥개의 목줄부터 탁 놓고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게 하면 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협치약속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구태정치, 언제 걷어내나

 

권력기관 개혁은 권력기관을 정권도구로 악용하는 구습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도파민 생성이 감소해 발생하는 근육긴장 이상증세인 세가와병을 소아마비(뇌성마비)로 오진해 환자를 장구한 세월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따위의 어리석은 행태는 종식돼야 한다. 더욱이 해법을 알면서도 여전히 이중 잣대로 사화(士禍)를 일으켜 파당적 이득을 꾀하는 15세기 식 구닥다리 한풀이 정치는 나라의 미래에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력기관 개혁과제는 국회가 동의해주셔야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에 사전설명 등 아무런 소통이 없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 어느 누구도 국회와 소통하지 않고 앞질러 국가핵심정책을 터트리는 방식은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고 해도 불통행태고질이다. 대화하고 협치하겠다는 약속들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이 구태정치의 폐습 풍조는 대체 누가 언제 걷어낼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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