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여왕개미’는 정말 죽었을까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10-13 13: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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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프랑스의 과학소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991년에 발표한 대표작이자 처녀작인 ‘개미’라는 소설로 ‘과학과 미래’ 독자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개미’는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소설 ‘개미’는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사각지대를 개미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채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묻는다. “누구든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개미에 대한 기록은 신비롭다. 개미라는 곤충이 지구상에 나타난 건 1억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400만 년 전인 인류의 등장보다 훨씬 앞선다. 종류만 1만4천여 종에 이른다니,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種) 중 하나인 셈이다. 현재 지구상의 개미는 1조(兆)의 만 배인 1경(京)마리로 추산되고 있는데, 개미 한 마리의 체중을 1~5㎎으로 잡아도 인류 전체의 무게와 맞먹는다는 경이로운 계산결과도 있다.
정부, “국내 최초유입 ‘붉은불개미’ 모두 사멸” 잠정 결론
지난달 28일 부산 감만부두에서 발견된 살인 ‘붉은불개미’ 소동이 가뜩이나 북핵도발 위협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더욱 고달프게 하고 있다. 특정 해충을 관리해충으로 지정하고도 검역망이 뚫리는 것은 해충관리를 식물검역에만 의존하는 후진적인 제도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지난 10년간 관리망을 뚫고 국내 유입하여 발생한 외래해충만도 총 13종에 이른다. 하루빨리 선진적 검역체계를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붉은불개미를 처음 발견한 이래 전국 주요 항만 및 내륙컨테이너기지 34곳에 예찰 트랩(덫)을 설치해 추가조사를 집중적으로 벌였다. 전문가 합동조사는 개미류 서식 가능성이 큰 지점을 대상으로 육안조사와 트랩조사를 병행해 실시해왔다. 정부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미국이 원산지임을 확인했으나 정확한 유입 경로는 밝히지 못했다. 와중에 정부는 사상최초로 국내 유입된 붉은불개미가 모두 사멸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붉은불개미’ 방재의 핵심은 알을 낳는 여왕개미 제거
그러나 개미 전문가인 김병진 원광대 명예교수는 “여왕개미가 죽었을 것이란 정부의 추정은 코미디”라며 맹비판한다. 이미 10년 전부터 붉은불개미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김 교수는 “남미에서 출발한 화물선에 묻어 미국 플로리다에 상륙한 붉은 불개미가 북서지역 캘리포니아까지 퍼져 미국 토착 개미의 3분의 2가 사라진 바 있다”며 “붉은불개미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100여명에 달하고 가축들의 피해도 엄청나다”고 주장한다.
붉은불개미 방재의 핵심은 알을 낳는 여왕개미 제거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여왕개미는 하루에 무려 1천여 개 씩이나 되는 알을 낳는 어마어마한 번식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든 국민 불안을 잠재워야 하는 입장인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민간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여왕개미 생존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검역 당국 역시 번식이 활발한 내년 봄, 여름에 다시 붉은불개미 집단이 발견될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관리해충, ‘식물 위해성’에만 초점 맞춰진 것이 문제의 요체
붉은불개미는 강한 독성물질을 몸속에 지니고 있어 날카로운 침에 찔릴 경우 심한 통증과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심할 경우 현기증과 호흡곤란 등의 과민성 쇼크 증상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벌이 가진 독과 같은 성분이 있기 때문에 벌 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쏘인 이후 호흡 곤란, 혈압저하, 의식장애 등이 나타나면 신속히 병원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와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붉은불개미는 이미 지난 1996년 관리해충으로 지정됐는데도 불구하고 유입을 막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해충은 지정부터 관리까지 모두 식물 위해성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된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해충은 식물을 통해서만 옮겨오는 것이 아니므로 식물검역 중심의 해충관리로는 해외 해충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란 어렵다.
지난 10년간 관리망 뚫고 유입 발생한 외래해충 총 13종
21년 전 붉은불개미가 관리해충으로 지정될 때에도 뿌리 및 감귤나무 껍데기에 대한 피해 우려 때문이었을 뿐 인체위해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농촌진흥청의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2006~2016년까지 10년 간 관리망을 뚫고 국내에 유입돼 발생한 해충은 포인세티아총채벌레, 잔디왕바구미 등 총 13종에 이른다. 2014년에는 총채벌레류, 가루깍지벌레류, 깍지벌레류 3종이 동시에 유입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위험도를 고려하지 않은 국경검역의 단순성, 미지정 병해충의 진단법 부재, 국가기관별 예찰과 방제 미흡 등 부실한 현재의 검역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도 정확한 해외정보를 확보해 유해 병해충 발생국가로부터 유입되는 화물을 보다 세밀하게 검역하는 조치가 시급해 보인다. 외래 해충으로부터 국민건강을 지켜내는 일에 대해서 국가는 추호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진실로 괜찮지 않다면, 결코 괜찮다고 말하지 말아야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는 ‘근면성실’의 상징이다. 그런 개미가 현대사회에서 해충으로 진화해 사람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집단생활을 하며 역할분담을 통해 자기 몫의 일을 열심히 하는 존재인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그런 생태 역시 결코 인간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존에 인간이 방해가 된다면 그들은 가차 없이 물어뜯고 찌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로 인간 삶에 대한 평가를 양분하는 일마저 허허롭다.
‘붉은불개미’처럼 인명을 위협하는 곤충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야 하는 국가의 책무는 막중하다. 북한의 핵폭탄 공격에 대책 없이 죽어나자빠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개미에게 물려죽을 수도 있다는 압박까지 당하는 일은 하루빨리 종식돼야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정부당국의 정직성이다. 진실로 괜찮지 않다면, 결코 괜찮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재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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