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그림자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6-28 17: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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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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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에 이어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한 한(漢)나라의 고조 유방(劉邦)은 진나라가 멸망한 원인을 군현제로 보고, 봉건제를 부활시켜 공신들을 왕으로 봉했다. 그러자 왕들의 반란이 잇따랐다. 고조는 혈족들을 왕후(王侯)에 봉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들 역시 기고만장하여 황제 자리를 넘보았다. 고조는 결국 큰 왕국을 분할하여 여러 개의 소국으로 만들어 제후들의 권세를 약화시켰다. 교왕과직(矯枉過直)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을 통한 내수 진작 효과보다는 영세 중소기업의 폐업에 따른 고용축소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과 업계는 특히 ‘2020년 1만 원’을 목표로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 “과연 내수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꼼꼼한 대비책이 필수적이라는 여론이다.
‘최저임금 1만원’, 부작용 우려 가시지 않아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근로자의 최저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노동자들의 허덕대는 삶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이자 가슴 짠한 호소로 들리기도 한다. 근로조건 향상을 통한 양극화 완화와 함께 소득주도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다른 근로자의 임금도 올라가고 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투자가 늘면서 고용이 늘고 성장이 이뤄진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까. 소득은 고용×임금×생산성의 함수라는 것은 상식이다. 임금이 증가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고용도 증가한다는 논거는 희미하기 짝이 없다. 현실에서는 임금이 증가하면 오히려 고용이 감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급격한 임금 상승 부담을 견디지 못한 사업주가 폐업을 할 수밖에 없어서 고용 기회조차 사라진다. 역으로 소득총량이 감소해 ‘소득주도 성장’이나 ‘양극화 해소’는 공염불이 될 것이라는 회의론이 여전하다.
급격한 임금인상, 영세 중소기업 폐업 사태 초래 가능성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준수율은 매우 낮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11.5%(222만명)로 영국(0.7%), 일본(2.0%) 등 주요 선진국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결코 사업주의 ‘준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최저임금과 시장임금 사이의 상대적 관계가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2000년대 우리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은 8.6%로 임금인상률 (5.0%)이나 물가상승률(2.6%)을 상회한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지급 여력이 낮은 기업을 중심으로 미만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임금인상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여전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46.3%가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가운데, 급격한 임금인상은 영세 중소기업 다수의 폐업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온다. 전 재산을 털어 죽도록 일하는 수백만을 헤아리는 소상공인들에게도 최저이익은 보장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이다.
평균 소득증가율 ‘자영업자 1.2%’, ‘일용근로자 5.8%’
금융감독원이 2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영업자 150만 명의 총 부채는 약 520조 원으로 1년 만에 60조 원이나 증가했다. 자영업자 1인당 빚이 무려 3억5천만 원에 달하는 셈이다. 취업을 못한 청년들이 궁여지책으로 뛰어드는 것이 소상공업이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들까지 물밀듯이 자영업계에 뛰어들면서 경기 침체 속에 경쟁만 치열해지다보니 빚만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영업자 평균 소득증가율은 놀랍게도 고작 1.2%에 머물러 있다. 일용근로자의 5.8%에 비해서도 훨씬 낮다. 월 매출이 100만 원도 안 되는 영세 사업자들도 수두룩하고 창업 1~2년 만에 투자금을 몽땅 날리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린다면 자영업자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하게 될 게 뻔하다.
영세 중소업계 벌써부터 “직원 쓰면 죽는다” 비명 즐비
최저임금 1만 원은 일정 규모를 갖춘 기업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예측이다. 빚잔치를 하고 사업을 접는 자영업자가 속출할 것이고, 저소득층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는 가뜩이나 열악한 영세 소상공인들의 앞길에 바윗돌을 굴려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 중소업계에는 벌써부터 “직원 쓰면 죽는다”는 비명이 즐비하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지원책으로 카드수수료율 인하 등을 제시했지만 현장에서는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더 큰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 저임금 영세 사업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산업 구조 합리화 정책과 병행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을 감당할 수 없는 사업체들이나 종사자들의 전직·전업을 지원하는 과감한 정책적 대응도 필요하다. 불공정한 거래 질서와 하도급 관행을 개선하는 강력한 공정거래 정책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 ‘목표달성’ 매달리면 맹독(猛毒) 될 수도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이나 5년에 걸친 산업 합리화 정책, 공정거래 질서 확립, 일자리 구조 조정 정책을 아우르는 종합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주도면밀한 종합계획과 공감 없이 목표달성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 자칫하면 한국경제와 민생에 맹독(猛毒)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종(鐘)을 만들 때 뿔이 곧게 나 있고 잘생긴 소의 피를 종에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한 농부가 어느 날 제사에 쓸 소의 뿔이 조금 비뚤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농부는 비뚤어진 뿔을 바로잡기 위해서 천으로 소의 뿔을 동여매고 힘껏 잡아당겼다. 결국 쇠뿔은 뿌리째 빠져 버렸고, 소는 죽었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다. 임금을 올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 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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