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탐방] 편죽 도경란 대표

말기암 어머니 위해 만든 죽,이제 우리 식탁에 오르다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8-30 08: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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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풀어놓는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다. 성공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 길을 찾아 가는 과정의 이야기다. 도경란(46) 대표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지, 멈춰 설 때는 아니다. 도 대표로부터 기로에서 만난 ‘편죽’의 탄생 과정, 먹거리에 관한 철학을 들어본다. 

 

한옥마을이 보였다. 전남의 시골 마을답게 조용하면서도 집들이 정갈하다. 인스턴트 죽 시장에 루키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편죽’을 만든 장소 치고는 너무 호젓했다. 이곳은 약속한 사람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종종 오는 곳이라고 한다. 여수시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민박 겸용 한옥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도경란(46) 대표는 개량한복을 입었다. 환한 얼굴이 인상적이다. 내어준 차를 마시고 한숨을 잠시 돌린 뒤 말을 시작했다. 거의 모든 인생을 여수에서 보낸 사람이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뻔한 이야기는 듣지 않을 참이었다. 예를 들어 ‘편죽’이라는 죽의 효능이나, 그 가치는 마지막에 들을 요량이고 인스턴트 죽에 자연 유기농 재료를 집어넣어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가 더 듣고 싶었다. 물론 가능하다면 어떻게 만드는지도 들으면 좋을 터다.


인생 스토리가 극적이면 더 좋겠다 싶었지만 도대표의 얼굴은 생각보다 해맑아, 큰 고생없이 달려왔다 싶었다. 생각처럼 그녀는 쾌활한 목소리를 말을 이었다. 그런데 5분이 지나자 아차 싶었다. 죽 이야기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 극적이고 마음을 붙잡아 버린 것이다.

 


시의 ‘사회복지사’였다
편죽의 대표를 하기 전 그녀는 여수에서만 20년 가량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다. 입양시설을 시작으로 장애인 시설을 거쳐 사회복지사가 공무직으로 바뀌자 시험을 보고 공무원으로까지 입성했다. 이른바 제1기 공무직 사회복지사였던 것이다. 


“특이할 것도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집에 1급장애인이 있었고 그 아이를 돌보면 특수교육학과 진학을 생각했었으니까요.”


집안의 유일한 딸인 그녀는 오빠의 아이, 즉 조카가 1급 장애인이었다. 그런데 도 대표는 그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즐거웠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특수교육학과가 있는 곳으로 지원했다. 떨어졌다. 그래서 방향을 튼 것이 사회복지사였다. 그야말로 지역 사회복지사의 조상격이다. 적성도 맞았다. 당시 사회복지사는 지금과 달리(지금도 힘들지만) 1인당 1000명까지 담당했던 시절이었다. 공무원 시절에는 현장 담당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업무도 넘쳐났다.

 

도 대표는 사무실보다 현장이 더 좋았다. 여자임에도 쌀가마니를 들춰 메고 여수의 골짜기부터 인근 섬까지 종횡무진했다.특히 그녀의 능력이 빛났던 것은 시에서 추진했던 ‘신바람 나는 경로당’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다. 10년간 이 프로그램을 주도했는데, 관내 500여 개의 경로당을 돌아다니면서 이미용, 수지침,마사지, 풍물놀이 등을 오전에 시행하고 점심을 만들어 대접했다. 오후에는 다 같이 즐기는 공연도 실시했다.

 

그때 그녀는 생각보다 노인들의 먹거리가 참 부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이라고 해서 먹을 것이 풍부한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혼자 사는 할머니들은 그래도 요리라도 해서 먹고 있었지만 독거 할아버지들은 정말 아무렇게나 먹고 있었다. 그녀가 죽을 떠올린 것은 그즈음이었다.

 

“어르신들이야말로 영양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영양을 음식에서 보충을 못하고 약으로 때우는 거예요. 또 이가 안좋아 웬만한 음식은 잘 드시지도 못 하구요. 그래서 필수 영양을 가득 채운 먹기 편한 죽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죽을 생각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작고한 친정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6년을 병수발을 했고 암 말기 즈음엔 그녀가 돌보다시피 했다. 복수가 차올라 식사를 못했고, 그런 어머니를 위해 죽을 끓였다. 그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끝내 하늘로 올라갔다. 무뚝뚝하고 속내를 잘 표현 안하던 그녀의 아버지 역시 6개월 뒤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공무원을 그만둔 것은 이때였다. 부모님을 잃고 나니, 늦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모험심이 강한 터였다. 그렇게 후련히 20여 년의 사회복지사 활동에서 손을 떼고 전통찻집 겸 죽집인 ‘가시버시’를 열었다. 넓은 평수에 우아한 음악과 더불어 다양한 차향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녀가 꿈꾸던 삶이었다. 하지만 그 삶은 2년까지가 전부였다.

 


기로에서 만난 ‘편죽’

퇴직금으로 받은 돈과 모아둔 돈까지 날린 것만 수억 원이었다. 손도 커서 ‘가시버시’를 하면서 한 장애인 복지관에 1년 이상 무상으로 죽을 공급하기도 했다. 또한 중간에 사기 치는 사람도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살아온 그녀가 하기에 사업의 세계는 살벌했다. 망하고 나니, 그제야 현실이 무거움을 알게 됐다.

 

그런 와중에 알고 지내던 언니가 운영하는 건물에 9평짜리 짜투리 공간이 있었다. 무언가를 하기엔 어려운 장소였다. 그녀는 사정을 해서 거기를 빌려 달라 했다. 건물 주인 역시 월세고 뭐고 받지 않을 각오로 내줬다. 그 9평에서 죽을 만들어 팔았다.

 

작은 냉장고 1개, 중고 씽크대, 가스렌지로 출발했다. 절실한 상황만큼이나 그녀가 만든 죽은 맛있었다. 여수 외부 지역 사람들이 먹고는 택배를 부탁할 정도였다. 주변에서는 “이 좋은 기술을 왜 크게 알리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도 대표는 자신이 만든 죽을 식탁에 올려보겠다는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의 인스턴트 죽인 ‘편죽’ 즉,편한 죽의 시초다.

 

속이 편한 죽

속이 편한 죽의 줄임말인 편죽은 100% 우리 농산물로 만든 반조리 식품(죽)으로 가정에서 물만 부어 끓여먹는 제품(전통죽)이다. 기존의 ‘죽’ 제품과 가장 큰 차별점은 물을 제외한 원재료 80% 함유량을 자랑하는 말 그대로 건강죽이라는 것이다. 끓이는 시간은 다른 인스턴트식품보다 길지만 맛은 확실히 집에서 끓인 죽의 맛이다.

 

종류도 다양해서 홈페이지(www.pyunjuk.kr)에 들려보면 호박죽, 흑임자죽, 녹두죽, 팥죽을 비롯해 대추죽, 콩은행잣죽, 7곡 타락죽, 방풍피고막죽, 장국죽 등 10가지나 자리한다.

판매처는 여수지역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판매한다. 물론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다. 홈페이지는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어 제품 소개만 올라와 있는 듯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먹어봐야 맛을 알지 않겠는가. 그래서 고른 죽이 팥죽이었다. 한 숟가락을 떠서 입안에 넣으면 팥향이 강하게 입안에 퍼진다. 왜 모 대기업이 편죽과 제휴를 맺으려 하는지 알 것만 같은 맛이었다. 팥죽에 담긴 면 역시 대단하다. 찰지고 부드럽다.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듯하다. 먹으면서 물었다. 왜 대기업의 제휴를 마다했느냐고.


 

“컵라면처럼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물론 그 기술도 있고, 특허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제안을 한 담당자에게 물만 부어 먹는 죽과 지금처럼 끓여서 먹는 죽 두 종류를 내놓았죠. 그 담당자가 양쪽을 모두 먹어보더니, 두 번 다시 물만 부어먹을 수 있는 죽 이야기는 꺼내지 않더라구요. 모두가 좋아하는 죽을 만들고 싶은 것이지, 빨리 그러나 맛없는 죽을 만들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요.”

 

외국에서도 주문이 들어오지만 지금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대부분 수작업이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죽이 수작업이라니. 그런데도 그녀는 좋다고 한다.

 

“하루 1000개를 생산하는데, 일반 대중들도 즐기기를 당연히 원하지만 경로당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지급되는 바람이 있어요. 영양이 부족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음식이니까요."

<글/ 강진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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