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장려금은 감사함과 따스함, 그리고 희망입니다.”
- 국세청, 근로·자녀장려금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총 20편 선정
- 나홍선 기자 | hsna@joseplus.com | 입력 2025-02-14 12: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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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2024년 근로·자녀장려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실시한「2025년 근로·자녀장려금 체험수기 공모전」심사 결과 대상 1명, 금상 2명, 은상 5명 등 총 20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이번 공모전은 ‘힘든 일상 속에서 만난 든든한 동반자, 근로·자녀장려금’을 주제로 2024년 11월 6일부터 12월 31일까지 55일간 진행되어 총 334편의 체험수기가 응모되었다.
응모된 작품은 수상작 선정과정의 공정성과 전문성 제고를 위해 한국문인협회에서 심사를 진행하였으며, 사례의 구체성과 진정성, 장려금 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 대상에는 ‘장려금으로 추운 겨울에도 가족들을 위해 배달일을 하는 남편에게 따뜻한 방한용품을 선물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라며 읽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든 30대 주부 조00 님의 수기가 선정되었다.
○ 금상에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이자 힘’이 되어준 근로장려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적어낸 한부모 가정의 40대 가장 이◇◇ 님과 ‘막막한 순간, 한줄기 빛이 되어준 장려금’이라는 내용의 수기를 제출한 70대 노부부 가장 이△△ 님이 선정되었다.
○ 은상에는 근로장려금 덕분에 학비 걱정을 덜고 ‘더 큰 꿈을 꾸고,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20대 대학생 이□□ 님의 희망찬 수기를 비롯하여, 근로·자녀장려금과 함께한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들에게는 국세청장상과 함께 대상 150만원을 포함하여 총 800만원의 상금이 지급되며, 시상은 2월말까지 각 관할 세무서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합 계 | 대 상 | 금 상 | 은 상 | 동 상 | |||||
인원 | 상금 | 인원 | 상금 | 인원 | 상금 | 인원 | 상금 | 인원 | 상금 |
20 | 800 | 1 | 150 | 2 | 80 | 5 | 50 | 12 | 20 |
○ 수상자는 국세청 누리집(www.nts.g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수상작은 전자책(e-book) 게시 및 수기집으로도 발간하여 근로・자녀장려금 홍보에 널리 활용될 계획이다.
국세청은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자분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근로・자녀장려금과 함께 행복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도록 복지세정 구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대상> 국세청의 장려금 덕분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느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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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편과 어린 두 남매를 키우는 30대 전업주부입니다. 일찍 시작한 결혼생활에 외벌이를 하는 남편은 인테리어 목수 일이 없을 때는 퀵배달을 나가며 가족들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만만치 않은 건지 간암 판정을 받은 친정엄마께 남편이 간이식을 해주며 수개월 일을 쉬게 되었고, 생활을 이어나가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소득이 줄어 대출까지 어려워지던 그즈음 5월경 근로·자녀장려금을 신청하라는 국세청 안내문자를 받고, 반신반의하며 장려금을 신청하였습니다. 8월29일 새벽, 단잠을 깨운 핸드폰 문자알림으로 장려금 지급 소식을 전해 듣고 부부가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받은 장려금으로 추운 겨울 오토바이를 타야 하는 남편에게 방한용품을, 아이에게는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매트리스를, 부모님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명절선물을 드렸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보람되게 돈을 썼다는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국세청의 장려금 덕분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
금상 | | 근로장려금은 감사함과 따스함, 그리고 희망입니다. |
40대 한부모 가정 | ○ 아내와 이혼 후, 영업일을 하며 홀로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느라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수입도 줄어들고 생계를 유지하는게 힘이 들었습니다. -무더운 올 여름 전기세가 밀려 막막했으나, 근로장려금으로 밀린 요금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고 크리스마스에는 두 아이를 데리고 패밀리 레스토랑도 다녀올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근로장려금 정책은 제게는 감사함과 따스함, 그리고 희망입니다. |
금상 | | 막막한 순간, 노부부의 한줄기 빛이 되어준 장려금 |
70대 노부부 가장 | ○ 노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보청기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아내를 두고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전세금 대출 이자가 올라 생활비가 부족한 와중에 의료비까지 예기치 않은 지출이 늘어나, 저희 노부부에게 큰 걱정이었지만 근로장려금으로 병원 검사비와 약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칠순이 넘은 노인들에게 우편으로 장려금 신청 연락이 오고, 나이든 사람들도 손쉽게 장려금을 신청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
은상 | | 근로장려금, 내 삶에 새긴 감사의 인사 |
20대 대학생 | ○ 학업과 생활비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같이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근로장려금 덕분에 학비 걱정을 덜고 학업에 더 몰두할 수 있게 되어 학업의 즐거움을 새롭게 느끼고, 망설이기만했던 교외 활동과 워크샵 참여로 더 큰 꿈을 꾸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되었습니다. -근로장려금을 통해 누린 이 모든 감사한 경험을 나누며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힘쓰고 싶습니다. |
참고 | | 2025년 근로·자녀장려금 체험수기 대상 전문 |
대상 | | 국세청의 장려금 덕분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합니다. |
“추운 겨울,
남편에게 따뜻한 방한용품을 선물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30대 주부 조00 님-
먼저 이런 감사함의 뜻 을 전할수 있게 이런 공모전을 기획해 주신 공무원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남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젊은 나이에 시작한 결혼 생활이라 넉넉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살림살이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평범한 삶이 였던 것 같습니다. 저희 신랑은 인테리어 일용직 일을 하면서 삶에 첫 단추를 꿰어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까지는 비록 외벌이였지만 신랑 월급만으로 아끼면서 살아갈 만 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친구가 다니는 ‘미술학원에 가고싶다’는 말을 시작으로 학원이라는 곳을 보내게 되었고 사교육비 명목으로 첫 지출을 시작했습니다. 월세살이를 하던 우리에게는 미술학원비 15만원이 그 당시에 큰 부담이였지만 8살 어린 아이에게 그 사정을 설명해 주기에는 제 자신이 못난 부모라는 생각이 들어 사교육 아닌 사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수원에서 지금 살게된 광주로 이사온지 5년차. 수원에서 월세살이를 전전하며 2년이 채 안된 시점부터는 그다음 이사갈 집을 늘 구하러 다녀야 했고 그때부터 ‘집을 어떻게 정착해야 하나’에 대한 걱정이 저와 신랑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영혼을 끌어 모은다는 ‘영끌’을 해서 이사 걱정없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뤄보자는 생각이 들어 알아보던 찰나에 집값이 다른 곳보다 그나마 저렴했던 경기도 광주로 터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집은 우리에게 꿈만 같은 집이였습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던 바퀴벌레가 없었고 제 인생 처음으로 살아보는 아무도 살지 않았던 새로 지은 집이였습니다. 물론 대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우린 아직 젊으니 열심히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만만치 않더군요. 광주로 이사온 후로 신랑은 사업자를 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매일같이 스티커와 전단지를 붙여가며 생계를 책임지려 노력했습니다. 그 당시는 코로나가 초기여서 심각하다는 인지도 하지 못했던 터라 새로운 사업에 대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거리두기를 시작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서로하지 않았고 집콕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퍼질 정도로 사람들은 서로 외부사람과 접촉을 하지 않았습니다. 행복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냈던 인테리어 사업이 최악을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한달 벌이가 변변치 못하면 그 다음 달은 더 심한 생활고가 밀려왔습니다. 그 당시에 매일같이 신랑이랑 했던 말이 ‘아이들없이 우리 둘이라면 라면만 먹고라도 지낼텐데..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그럴 수 없다.’ 였습니다. 아이들은 마냥 행복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티를 내기에는 제 자신이 더 무너질거 같아 씩씩한 엄마 아빠의 모습을 이어 나갔습니다.
친청과 시댁 두집 다 저희에게 도움을 줄 만한 형편이 아니기에 우리는 버티고 버텼습니다. 버티는 사이 빚은 점점 늘어만 갔고 아이들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날들도 많아 졌습니다. 그래도 부모이기에 아이들을 지켜내야 하기에 빚을 낼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정말 급할 때는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쓴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이들과 하루하루 웃을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했습니다. 언젠간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꼭 올거다. 사람은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을거다. ‘오빠 분명 우리는 잘될거야.’ 라며 신랑과 제자신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최면을 걸며 다독였습니다.
그 와중에 감사하게도 첫째 딸아이가 아주 바르고 야무진 탓에 주변에서 늘 칭찬을 받아 왔습니다. 둘째 아이도 누나를 보고 자라서인지 학교에 입학해서 누나의 뒤를 이어 너무 좋은 칭찬을 받으며 커가고 있었습니다. 그 탓에 우리 부부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빚은 우리에게 큰 짐이 아닌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는 조그마한 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로 인해서 우리 부부가 더 큰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영업이다보니 일이 꾸준하지 못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테리어 일이 없을 때는 퀵을 나갔고 눈이오나 비가오나 일요일 하루만 쉬고 신랑은 쉼없이 달렸습니다. 추운 한겨울날 땡땡 얼어 붙은 얼굴을 하고 저녁 10시쯤 들어오는 신랑을 보고 울컥하지 않을 아내가 있을까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맡아줄 곳도 없고 맡아주려 줄 돈조차도 아까워 그 돈이 그 돈이라는 생각에 집에서 아이들을 양육했습니다. 그 와중에 엎친데 덮친격 친정엄마가 간암으로 간이식이 필요한 상황인데 가족들 중 유일하게 저희 신랑이 맞아 떨어지는 운명같은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신랑은 큰 결심을 하여 수술에 동의했고 3년 전 간이식 기증자로 수술을 했습니다. 3개월 회복 후 다시 일을 시작하였지만 생활을 이어나갈 만큼 일은 있지 않았고 신용보증재단에도 가봤지만 소득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대출이 안된다는 말을 듣고 신랑과 걸어왔던 기억도 나네요.
그로부터 1년 후 2024년 5월경 신랑 핸드폰으로 자녀장려금과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문자가 왔었습니다. 집이 있어서 안될 것 같다고만 생각했던터라 뜻밖이었습니다. 빚투성이 집이여도 서류상에는 재산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9월에 나온다는 문자 내용을 보고 몇달 앞으로 다가올 추석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둘 키우고 살면서 부끄럽게 양가에 떳떳한 자식 노릇을 못한 거 같았던 마음이 양손을 무겁게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면서요. 신청 후 그냥 행복한 9월만 바라보며 지냈습니다. 8월29일 새벽 5시 35분, 머리맡에 올려두고 자던 신랑과 제 핸드폰에 연달아 진동이 2번 울렸습니다. 정말 약속이라도 한 듯 신랑이랑 제가 일어나서 각자 핸드폰을 봤습니다. 보자마자 껴안고 부둥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울컥한 마음이 드네요.
그 돈으로 5년이 다되어 갚아가던 자동차 할부 잔금 100만원을 갚았습니다. 한달에 30만원 이상이 되는 부담스러웠던 마음의 짐을 덜었습니다. 10년째 매트리스를 쓰던 아이들에게 큰 맘 먹고 15만원짜리 매트리스를 선물했습니다. 아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높이가 있는 매트리스를요. 추석날 양가에 결혼 후 처음으로 현금 20만원과 과일 선물세트를 함께 사드렸습니다. 그동안 선물세트 아니면 현금 10만원만 가지고 갔던 우리에게는 너무 보람되고 뿌듯한 선물 이었습니다. 그리고 겨울내내 춥게 퀵 서비스와 목수 일을 병행하며 오토바이를 타는 신랑에게 이제 두달 남짓 다가올 한파대비 방한 용품을 사주었습니다. 부츠와 방한장갑, 목도리, 잠바, 방한용 바지 등등...35년을 살면서 돈을 썼던 순간들 중 가장 알차고 보람되게 ‘돈은 이렇게 쓰는 것’ 이라는 걸 새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는 평범할수 있었던 일상이 저희에게는 하루 하루가 특별했습니다. 힘든 순간들을 버티면서 인생의 쓴 맛을 알게 되었고 아이들에게서는 부모라는 무한한 책임감과 인생을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라는 긍적적인 세상을 배웠고
국세청이 준 이 장려금으로 인하여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더 열심히 살자’라는 생각을 더 깊게 새기게 되었습니다.
저는요, 그 이후로 돈으로 행복의 기준을 잡지 말자는 게 삶의 원칙이 되었습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자신이 얼마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나 남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족들과 행복한 것이 정말로 무엇인지 알게 되었거든요.
장려금 남은 돈은 많진 않지만 제 통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소중한 돈이기에 앞으로 적재적소에 맞게 잘 쓰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자영업자분들이 힘들어 하십니다. 우리 부부 역시도 고금리로 은행 대출이자가 이번 달부터 20만원이 추가 되었습니다. 사업과 생활고로 낸 빚 역시 열심히 성실 상환 중인 상태입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에, 가족이 있고 아이들과 웃을 수 있다는 현실에, 행복하기로 했고 앞으로 더 열심히 가족을 꾸려나갈 계획입니다. 저희 가족에게 올 겨울은 더욱 따듯한 한 해가 될거 같습니다. 안그래도 이런 고마움과 감사함을 어디 남길 곳이 없나 했었는데 이런 기회를 빌려 다시한번 공무원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이런 정책과 제도들이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고있는 국민들에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된다는 점을 꼭 잊지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족에게 커다란 선물 아닌 선물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멋진 우리 신랑과 아이들 잘 양육하며 더욱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따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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