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희철의 황금굴비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11-06 07: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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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나는 굴비랍니다. 조기라고도하고 석수어라고도 부르는데 다 내 이름입니다. 몸이 쫄깃한 건 동지나해를 지나 흑산도를 건너 칠산 앞바다까지 출렁이는 물결이 박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끝내 감을 수 없었던 눈동자에는 여전히 푸른 파도가 넘실거립니다. 그러므로 나를 먹는다는 건 파도를 먹는다는 거예요.

  

비싼 굴비를 한 입만이라도 먹어본 이들은 안답니다. 내 몸을 빌려 요동치는 파도가 되어 금방이라도 바다로 헤엄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몸값이 좀 나간다고 날 이용하여 로비를 벌일 생각일랑 마세요. 난 그런 것엔 영 젬병이거든요.

 

바다에는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지만 법성포 거리에는 밀물만 있어요. 굴비파도가 사시사철 몰아쳐요.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떼거리로 몰려다니지요. 굴비는 종류가 다양하여 어떤 걸 구입해야 할지 힘들 수도 있어요. 상품의 이름마저도 다양해요. 우린 21센티미터에서 22센티미터부터 시작하여 1센티미터 차이로 등급이 갈라져요. 그 아랜 잔챙이들이니까 여기선 말하지 않을게요.

 

사람들은 1센티미터 차이로 등급을 매겨요.육안으로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1센티미터가 등급을 갈라요.

 

심지어 꼬리 한 부분을 가지고도 최고 몇 십 만원까지 차이가 나요. 대략 25센티미터 안팎도 대개의 사람들은 먹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죠. 하지만30cm가 되는 특품 4호쯤 되면 몸값이 장난 아닙니다. 1센티미터 차이로 등급이 올라가다가 30센티미터가 넘으면 최고 몸값을 받아요.

 

한 사내가 가게로 들어오더니 보통 이상을 원하는 군요. 주인은 사내를 힐끔거리며 바라보더니 오십만 원짜리 굴비두름을 내놓았죠. 하지만 사내는 더 비싼 것을 요구했어요. 주인은 사내의 눈치를 보다가 우릴 내놓았어요. 우린 금가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노랗게 황금빛이 도는 모습에 사내는 넋을 잃더군요.

 

사내는 가슴 속으로 한줄기 폭풍이 몰아치는지 세찬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굴비처럼 혓바닥을 빼물었어요. 우린 황금굴비나 다름아니었어요. 30센티미터 급은 우리나라 최대굴비로 최고의 몸값을 치러야 하니까요.

 

내가 속한 굴비두름은 황금가루를 칠한 것처럼 열 마리에 백만 원을 호가했어요. 그토록 찾아 헤매던 황금투구를 쓴 굴비를 보고 사내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그것은 신화였어요. 한번이라도 황금굴비 맛을 볼 수 있다면, 사내는 입맛을 다셨어요.

 

사내는 천하별미 굴비를 수랏상에 진상하고 귀양에서 풀려난 이자겸처럼 직장상사에게 진상했어요. 그의 직장 상사가 굴비를 아주 좋아한다는 소문이 자자했거든요. 

 

이게 얼마만인가요. 나는 다시 험난한 물살을 저어나갔어요. 사내는 어쩜 세상이라는 물살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나의 힘센 지느러미라도 빌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황금굴비만이 그의 묵은 한을 풀어줄지도 모르니까요. 사내는 우리들 명성에 대한 믿음이 컸어요.

 

나는 사내에게로 반려되고 말았어요. 그는 정성을 다했으나 반려된 결재서류처럼 되돌아온 우릴 바라보았죠. 최고를 향한 간절한 몸부림이 우리 몸에 박제되어 있었지만 몸값이 너무 비쌌어요. 우린 아무나 넘볼 수 없는 몸이었거든요. 

 

아무래도 그 상사는 우릴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나 봅니다. 난 입을 쩍 벌린 채 약아빠진 사내의 정신을 물어뜯고 싶었어요. 어디 한번 먹을테면 먹어봐라. 나는야 황금굴비. 날 먹을 수 있다면 당신도 황금인간. 1센티미터 차이로 등급이 갈라지는 게 굴비뿐이더냐. 날 먹을 수 있다면 제발 배터지게 먹어봐라. 날 따라 동료들도 일제히 입을 쫙 벌린 채 그렇게 외치고 있었지요. 

 

사내는 황금굴비는 차치하고라도 아직까지 한 번도 값나가는 굴비를 먹어보지 못했어요.

 

척 보면 알거든요. 사내는 오랫동안 날 바라보았어요. 이윽고 포박되어 있는 몸을 풀었겠죠. 그리곤 수돗물을 틀어 깨끗이 씻더니 칼등으로 비늘을 긁어냈어요. 저 사내가 진정으로 이 몸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비늘들이 떨어져나갔어요.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비늘도 황금비늘처럼 보였죠. 약한 불로 프라이팬을 서서히 달구자 가슴이 이내 뜨거워졌어요. 사내는 뜨겁게 달궈진 가슴팍에다 굵은소금을 뿌려 방생했어요. 나는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애써 몸을 뒤척였어요.

 

내 몸이 목어처럼 지직거리기 시작하자 사내의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어요.

“당신 지금 제 정신이오? 그게 얼마짜린데 먹는 거예요? 도대체 한 점에 얼마짜리나 되는 줄 아느냔 말예욧.”

 

사내도 지지 않았어요. “지극히 제 정신이야. 최고 몸값의 비밀을 알려거든 먹어봐야 할 것 아닌가?”

 

사내는 일반굴비의 몇 배나 되는 황금비밀의 맛이 몹시도 궁금했는지 조심스레 살을 한 점 사악 떼어냈어요. 사내는 도대체 한 점에 얼마짜리나 되는지 어림해 보았어요.

 

“황금굴비 한 마리당 십 만원이니 스무 점 나온다고 가정하면 한 입도 안 되는 점당 오천 원쯤 되는 셈이군.”

 

▲ 김희철 동화작가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을 때마다 죽은 듯이 정지해있던 내 몸속의 근육들이 살아 꿈틀거렸어요. 그 간간하고 꼬들꼬들한 지느러미가 세차게 사내의 몸을 저어나갔어요. 나는 야금야금 사내를 집어삼키며 넓고 깊은 바다의 길을 열어나갔어요. 순간 환청처럼 사내의 몸속으로 조기떼의 울음이 퍼져갔어요.

 

사내는 황금굴비가 되어 비굴한 정신을 흔들어 깨우며 험난한 물살을 저어나갔어요. 사내는 나를 꿀꺽 삼키고는 남은 동료 몇 마리는 부모님께 선물했어요. 놀란 눈동자라니. 그 뒷감당은 못한답니다. 하지만 이건 확실해요. 

 

몸값의 몇 배나 되는 복이 절로 굴러들어온다는 것을요. 우린 비굴하지 않은 사랑을 전달하는 데는 꽤나 쓸 만하거든요.

 

다행히도 동료들은 워낙 몸값이 비싸기에 형편대로 드시라고 가격이 다양해요. 특히 고추장굴비는 어른들이 무척 좋아한답니다. 우린 굴비 군단이거든요. 그렇다고 자린고비는 되지마세요. 어린 자녀들에게도 많이 먹이세요. 밥을 녹차 물에 말아 구운 굴비를 찢어 척척 숟가락에 얹혀줘 보세요. 아, 어릴 때 대접받고 자랐구나 아주 좋은 기억의 창고를 간직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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