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산문집 -전문-
- 성공의 열쇠, 누가 쥐고 있는가?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25-05-10 07:23:11
김상철의 산문집
성공의 열쇠, 누가 쥐고 있는가?
1부 – 내가 나를 잃어버린 시간들
1. 삶의 목적 없이 방황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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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아오긴 했지만, 문득 뒤 돌아보니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려 왔는가’ 라는 질문 앞에
나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전문직업인으로서, 매일 수많은 서류와 숫자 속에서 살아왔다.
누군가의 돈을 지켜주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었지만,
정작 나는 ‘내 인생의 목적’을 지키지 못했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직업, 안정된 수입,반복되는 일정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자주 잊고 살았다.
그 시절, 나는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삶의 의미와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삶은 마치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았다.
겉으론 움직이지만, 안에선 점점 침몰하고 있었다.
특히 은퇴를 염두에 두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요즈음
주위의 젊은 후배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고,
나는 점점 뒷자리로 밀려나며 소리 없이 자리를 정리해야 하는 존재로 되어 간것 갔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자꾸만 고개를 들기 시작한 건.
어느 날, 퇴근길 전철 안에서
내 옆에 앉은 젊은이가 노트북에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적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무언가에 빠져본 적이 있었던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삶의 목적이 없다는 건 단지 게으름이나 실패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그 후로 나는 나 자신에게 "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에 관하여 질문하는 습관을 들였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향해 살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그 물음은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바로 나를 다시 삶의 중심으로 이끌어주는 ‘시작’이었다.
그 동안의 시간들은 나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는 자는 어떤 비바람에도 꿋꿋하며 흔들리지 않음을 깨우치게 했다.
어떤 순간이든 그 안에는 소중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 의미와 가치는 각자의 내면에 있다.
2. 왜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왜 결과는 이 모양일까?”
“나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도 했는데, 왜 일이 틀어지는 걸까?”
" 왜 나는 하는 일마다 잘 안될까?" 나도 그랬다. 아니,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한창 바쁘게 일할 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고객 세무 업무에, 조세 상담에, 그리고 사람들과의 약속까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뛰어다니며 ‘ 언젠가는 여유가 생기겠지 ' 하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그런데도 때때로 일은 꼬이고,
고객은 떠나고,
원했던 성과는 물거품이 되곤 했다.
그때 나는 자주 위축되고 좌절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운이 없는 건가?”
“내 방식이 틀렸던 건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한 실패나 실수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현실의 벽들이 있었다.
첫째, 변화하는 환경을 제대로 읽지 못한 내 고집이었다.
업무 방식은 시대의 흐름을 따나가지 못했고,
변하고 있는 고객의 니즈조차 읽지 못하면서,
나는 과거의 경험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어쩌면 나를 가장 많이 가로막은 벽이었다.
둘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 했던 외로움이었다.
도움을 구하는 법을 몰랐다.
약해 보일까봐, 어리석어 보일까봐
힘들어도 참고, 몰라도 아는 척했고,
그 결과, 더 깊은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셋째, 성공에 대한 조급함과 비교였다.
내가 세운 기준이 아니라,
남들과의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다 보니
늘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안 될까?”라는 생각은
내 삶을 내 뜻대로 살아가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되었다.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내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정작 내가 나 자신의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삶은 내가 세운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건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길로 인도받고 있는 중’이거나 ' 학습의 과정 중'에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실수에 위축되거나 내 삶을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뜻대로 안 되는 날이야말로,
내가 나를 다시 바라봐야 할 기회라고.
왜? 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그 답을 되새겨 보는 성찰의 시간이 흔들림 없는 삶의 뿌리다.
마스터,
이 장이 독자들에게 ‘실패가 아니라 성찰의 기회’라는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소제목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소중한 시간들”*도 준비해드릴까요?
3.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소중한 시간들
어느 날, 책상 서랍 속에 오래된 다이어리를 꺼내보았다.
그 안엔 빽빽하게 적힌 일정들,
세무 상담, 고객 미팅, 보고서 마감…
하루도 비지 않게 빼곡히 채워진 기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 나 자신은 없었다.
그때 문득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그렇게 바쁘고 치열하게 살면서,
무엇을 남겼는가?”
“그 시간 속에, 나는 있었는가?”
돌이켜보면 나 역시 ‘시간의 노예’로 살았던 날이 많았다.
해야 할 일에 쫓기고,
남의 기대에 맞추고,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정작 내 마음은 점점 보이지 않았다.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
머릿속으로 하루의 일정을 계획하고,
저녁이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조용히 텔레비전을 켰다.
가족의 얼굴도, 나 자신의 감정도
그 바쁜 시간들 속에서 뒷전이 되었다.
마음은 자꾸 허전했고,
잠들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이방인으로 살았구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은 전혀 달라진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의미’가 아닌 ‘일과’로 시간을 채워왔다.
무엇을, 왜 했느냐를 묻지 않은 채
눈앞의 할 일을 해치우는데 급급하며 살았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잃고 있었다.
삶의 의미, 가족과의 대화,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한마디조차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어있을 때 비로소 ‘사는 것’이 된다.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들도,
그것을 돌아보며 성찰을 통해 다시 마음의 근본에 다다르면
그 역시 삶의 자양분이 된다.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지금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 질문 하나가
시간을 다시 ‘삶’으로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다.
4. 남 탓, 환경 탓, 그리고 나의 회피
"나라가 이래서 안 된다."
"경제가 어려워서 그렇지."
"운이 없었어."
나는 예전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시절이 있었다.
한때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때, 나는 머릿속으로 핑곗거리를 열심히 찾았다.
“경기가 나빠서 고객이 줄었지.”
“정부 정책이 바뀌어서 일이 꼬인 거야.”
“내가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할 수 있겠어.”
겉으론 침착하게 보였지만, 속으로는 세상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래전 함께 일하던 후배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와
이제 막 퇴직하고 제2의 삶을 준비 중이라며,
소박하지만 자신만의 세무 교육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고 했다.
“형님, 장비는 스마트폰 하나로도 충분하더라고요.
생각보다 반응도 좋아요.
작지만 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그 말에 나는 멍해졌다.
나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부족했던 그 후배가
스스로 길을 찾고, 움직이고, 도전하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탓하던 환경은,
사실 내 안의 두려움과 게으름을 감추기 위한 장막이었음을.
"나는 시대를 잘못 만났어."
"이 나이에 뭘 더 하겠어."
이런 말들은 달콤하지만 독이 된다.
남 탓을 할수록,
환경을 핑계로 들수록,
내 삶의 운전대를 남에게 넘겨주게 된다.
나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았던 것,
비판이 두려워 입을 다물었던 것,
익숙함 속에 안주하며 새로운 도전을 피했던 것,
그 모든 게 결국 **‘나의 회피’**였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 인정은 괴롭지만, 동시에 자유를 주었다.
남 탓을 멈추는 순간,
나는 다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환경을 바꾸는 힘은 없다 해도,
그 환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내 삶을 바꾸는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2부 – 성공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1. 성공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성공의 공식을 들으며 자랐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높은 연봉,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
그것이 ‘성공’이라고 배웠고,
의심하지 않은 채 그 길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문득 멈춰서 이렇게 묻는 이들이 있다.
“나는 다 가졌는데 왜 허전할까?”
“나는 노력했는데 왜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성공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나는 조세전문가로서 어느 때인가,
억대 연봉을 벌며 화려하게 보였던 고객 중
자주 병원을 찾고, 자주 외로움을 호소했던 사람을 기억한다.
그는 내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돈은 많은데, 대체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라는
그 말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반면에, 하루 매출이 10만 원도 안 되는 작은 김밥집을 운영하면서도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며,
손님들과 나누는 대화를 소중히 여기는 한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 진정한 ‘성공’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건 누군가가 정해주는 목표가 아니다.
내가 나답게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 자체가 성공이다.
이제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내가 원하는 성공은, 남이 부러워하는 삶인가, 내가 만족하는 삶인가?”
마스터로서 나는 말하고 싶다.
성공은 소유의 결과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성장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성공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이렇게 써보자.
성공 =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삶.
그 정의를 마음에 새긴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남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다.
2부 – 성공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2.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힘
“요즘 세상에 뭘 해도 안 돼요.”
“나이가 있어서 이제는 시작할 엄두도 안 나요.”
“저는 가진 게 없어서요.”
나는 살아오며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한때는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지금이 아니었으면, 내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젊었을 때 시작했더라면…’
그렇게 외부 조건에 기대어 나를 합리화하는 일이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만든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선배였다.
정년 퇴직 후에는 몸도 약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줄어
삶의 의미를 잃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동네 도서관의 무료 컴퓨터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손주가 자꾸 나한테 태블릿을 줘서요. 뭔지는 알아야겠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그의 배움은 조금씩 변화를 만들었다.
기초부터 배우고, 오타도 많았지만,
그는 하루에 하나씩, 자신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삶의 단상, 추억, 느낀 점들을 적어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뜻밖의 댓글이 달렸다.
“어르신의 글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내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어요.”
그는 그때부터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구나’
하는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그 후, 지역신문에 칼럼도 싣고, 동네 어르신 대상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진 건 젊음도, 기술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시도해보려는 마음’만은 나에게 있었어요.”
그의 말은 잊을 수 없는 울림이 되었다.
성공의 출발점은 조건이 아니라,
그 조건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외부 환경은 늘 변하고, 완벽한 조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만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나는 지금도, 내 안에 있는 힘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의 열쇠는 멀리 있지 않다.
그 열쇠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믿고 꺼낼 용기가 있었는가,
그 차이일 뿐이다.
3. 책임지는 순간, 길이 열린다
“나는 왜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을까?”
“왜 내 삶은 남들처럼 풀리지 않을까?”
이런 고민에 빠졌던 시절,
나는 늘 외부 요인을 먼저 떠올렸다.
운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상황이 어려워서…
하지만 어느 날, 아주 단순한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뜨겁게 흔들었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입니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솔직히 머뭇거렸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책임지지 않는 삶은 늘 남 탓을 하게 되고,
그 순간 우리는 인생의 방향키를 놓쳐버린다는 것.
그 후, 나는 상담 중 만났던 한 청년이 떠올랐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며 수차례 실패를 경험한 후
늘 이렇게 말했다.
“투자자가 나를 몰라봤어요.”
“타이밍이 안 좋았어요.”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1년 후, 다시 만났을 때
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사실 실패는 제 준비 부족이 컸어요.
상황을 원망하느라 배울 기회를 놓친 것도 있었고요.”
그는 이제 작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며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가 달라진 건 사업 규모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태도’였다.
책임지는 순간, 두 가지 일이 생긴다.
첫째, 남 탓이 사라진다.
둘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책임이란 단지 어떤 결과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내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정직하게 서는 용기다.
책임감은 버거운 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남의 눈치, 환경의 탓, 과거의 후회를 내려놓고
“지금부터는 내가 나를 책임진다”고 선언하는 순간,
비로소 내 앞에 길이 열린다.
자유는 책임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책임지는 사람만이 진짜 인생을 산다.
나는 이제 안다.
실패도, 후회도, 시행착오도
내가 책임질 때
그 모든 것이 성장의 자산으로 바뀐다는 것을.
저자로서 나는 말하고 싶다.
책임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삶은 비로소 ‘자기만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책임은 멍애가 아니라, 해방이며 성장의 씨앗이다.
4장. 작지만 강한 ‘결단’의 힘
우리는 흔히 인생의 전환점은 거창한 결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올해 안에 반드시 성공하겠다.’
‘이젠 완전히 새 사람이 되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다.
진짜 변화를 이끄는 건,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내리는 ‘작은 결단’이다.
내가 그런 결단을 처음 경험한 건,
은퇴 이후였다.
세무사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난 뒤,
나는 한동안 무기력 속에 빠져 있었다.
쌓여 있던 책도, 써보려던 글도,
모두 “다음에”라는 말로 미뤄두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햇살이 참 좋아 보이던 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다짐했다.
“오늘 하루, 한 문장만 써보자.”
그 작은 결단이
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한 문장이 하루가 되고,
하루가 일주일이 되며,
나는 다시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시작은 위대한 다짐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소해 보이지만 단단한 결단이었다.
나는 또 한 명의 지인을 기억한다.
그는 은퇴 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매일 아침 집 앞 공원 벤치에 나가 앉는 ‘결단’을 내렸다.
처음엔 5분,
다음엔 10분,
그러다 산책도 하고,
주민과 인사도 나누며
삶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가 내게 말하던 말이 기억난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날,
단 한 걸음만 나가기로 한 그 결심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요.”
결단은 크기보다 ‘지속성’에 힘이 있다.
그리고 그 결단이 구체적일수록 더 강하다.
“매일 10분 책 읽기.”
“하루 한 명에게 감사 인사 전하기.”
“주말마다 가족에게 전화하기.”
이런 작고 사소한 행동이
시간이 지나면 내 삶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
저자로서 나는 전하고 싶다.
결단은 생각의 끝이 아니라, 행동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떤 명언보다, 강연보다,
당신이 오늘 선택하는 ‘한 가지 행동’ 이 작지만 가장 강한 출발이다.
3부 – 삶의 방향을 바꾸는 네 가지 실천
1장. 목적의 힘 – 나를 움직이게 하는 ‘왜’ 찾기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삶의 방향을 찾은 사람이다.
우리는 대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며 산다.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남들의 인정…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왜 하는가다.
한때, 나도 이런 질문을 회피하며 살았다.
“왜 세무사가 되었나요?”라는 물음에
“그게 안정적인 직업이라서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에 대한 열정도, 보람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왜’라는 목적이 내 안에서 희미해졌기 때문이었다.
저자로서 내가 깨달은 건 이렇다.
삶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이 아니라 ‘왜’에서 나온다.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처음은 단순한 시도였지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란다.”는
명확한 목적이 생기자
지치지 않고 계속 쓰게 되었다.
목적은 내 안의 엔진이 되었고,
그것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나는 또 한 사람을 기억한다.
한 어르신이 매일 새벽 공원에서 봉사를 하며 쓰레기를 줍는다.
누가 시킨 것도,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침부터 깨끗한 길을 만들면
누군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분명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오히려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왜’가 분명하면, ‘어떻게’는 저절로 따라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만의 ‘왜’를 찾아야 한다.
남이 원하는 이유가 아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
그 이유가 생기면,
작은 일에도 의미가 생기고,
힘든 길도 견딜 수 있으며,
결국 삶 전체가 바뀐다.
저자로서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할 ‘왜’는 외부에 있지 않다.
당신이 가장 가슴 뛰던 순간,
당신이 눈물 흘렸던 장면 속에
그 목적의 씨앗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2. 시간의 재발견 – 하루 24시간의 가치
“하루가 너무 짧아.”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
“내일 하면 되겠지.”
이런 말들을 얼마나 자주 해왔는가.
나 역시 한동안 그랬다.
일은 많고, 할 일은 쌓여 있지만
하루가 왜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는지,
무기력하게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흘려보냈는가’**가 더 중요했다.
은퇴를 앞둔 나는 한동안 아침 8시에 일어나
느릿느릿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넘기다가
TV를 켜고, 다시 끄고
이러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되었고
하루가 끝날 무렵엔 늘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도 별로 한 게 없네…”
그러던 어느 날,
손주가 이렇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요즘 뭐 하고 살아?”
그 말이 마음에 깊은 울림처럼 박혔다.
정말, 나는 요즘
무엇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그 질문 이후, 나는 하루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
그 시간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쓰이지 않는다면
삶도 결국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 2시간만이라도
‘내가 주도하는 시간’으로 정하기로 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지인에게 안부를 전하고, 감사 일기를 적었다.
그 작은 시간들이 모여
내 인생을 다시 ‘살아있게’ 만들었다.
또 한 지인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기만의 정원에 물을 주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가 길어졌어요.
내가 시간을 잡은 것 같아요.”
그가 말하던 그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난다.
시간은 우리에게 늘 말을 건넨다.
“너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가?”
많은 이들이 성공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시간 관리를 말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루 10분이라도 ‘의식적으로’ 쓰는 시간은
그 어떤 성취보다 큰 만족과 자신감을 준다.
저자로서 나는 확신한다.
인생은 결국, 하루하루의 누적이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면
삶도 흐릿해지고,
하루를 목적 있게 살면
그 하루가 인생을 빛나게 만든다.
지금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에 답을 구하는 삶은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
3. 자기주도성 – 삶을 선택하는 용기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요.”
“가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죠.”
“나는 그냥 흐름에 맡기고 살아왔어요.”
나는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사실, 나도 한때 그렇게 살아왔다.
‘좋은 선택’보다는 ‘안정적인 선택’을,
‘나의 뜻’보다는 ‘남의 기대’를 먼저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래전 동창회를 갔다.
그 자리에서 한 친구가 퇴직 후 혼자 오지 마을로 내려가
작은 고택을 고치며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들 놀라며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냐”고 물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는 남이 정해준 인생 말고,
내가 선택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어.”
그 말이 내 가슴을 깊게 때렸다.
그 친구는 도시에서는 늘 남들보다 한발 뒤에 있는 듯했고
말수도 적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새벽 글을 쓰고, 직접 만든 된장을 이웃들과 나누며
“하루하루가 내가 선택한 삶이어서 좋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자기주도성은 단지 능력이 아니라,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의 핵심은
‘남들이 뭐라고 할까’를 넘어서
‘내가 나에게 만족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세무사 시절에도
내가 원하지 않는 일, 억지로 맡은 역할,
그리고 원칙에 어긋나지만 고객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애써 외면한 채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제는 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비로소 내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자기주도적인 삶이란,
무작정 독립적인 삶이 아니다.
그건 내가 스스로 결정한 삶을 살아가는 태도다.
다소 느리더라도, 작더라도
그 선택이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때
삶은 훨씬 더 충만해진다.
저자로서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은 하루를 누구의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은 인생을 스스로 이끌 준비가 되어 있다.
4장. 작은 습관의 기적 – 매일 1%의 변화 만들기
“이젠 뭘 해도 늦은 것 같아요.”
“내가 바뀔 수 있을까?”
이런 말은 마치 변화에 대한 포기 선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나는 단언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데 필요한 건,
큰 결단보다 작은 습관이다.
나는 어느 날, 스스로가 너무 무기력해졌다는 걸 느꼈다.
글도 잘 안 써지고, 몸도 무거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 한 줄만 읽자.
많은 것도 아니고, 딱 한 줄.
처음엔 별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그 한 줄이 어느 순간 두 줄이 되었고,
책 한 페이지가 되었고,
결국 아침 독서가 내 하루의 기둥이 되었다.
한 지인은 매일 아침 10분씩 일기를 썼다.
그는 처음엔 그냥 “오늘도 무난했다” 정도만 적었다고 했다.
하지만 30일이 지나자
글에는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고,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분은 퇴직 후 허전함을 느끼다
매일 오전 9시에 집 앞 화단을 돌보는 습관을 들였다.
“식물한테 물 주는 일인데 뭐 대단하겠어요?” 하면서도
그 시간만큼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지금은 주변 주민과 나누는 화단 공동체까지 만들어졌다.
이처럼 작은 습관은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대부분 하루의 쓰임에서 비롯된다.
단 1%씩, 작지만 꾸준히 나아가면
1년 후, 그 변화는 상상 이상이 된다.
당장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습관 세 가지를 제안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감사한 일 한 가지”를 말해보자.
마음의 방향이 하루를 바꾼다.
잠들기 전, 오늘 잘한 일을 하나 적어보자.
자기 효능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하루 10분, 휴대폰을 내려놓고 조용히 앉아 있어 보자.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 작은 실천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이 삶의 기적을 만든다.
저자로서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이 매일 하는 사소한 행동이
결국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든다.
작은 습관은 기적을 부르지 않는다.
그 자체가 기적이다.
4부 – 실패도 성공의 열쇠가 된다
1장. 실수에서 배우는 용기
우리는 실패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긴다.
실수는 감추어야 할 흠이고,
남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약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살아오며 확신하게 되었다.
실패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진짜로 성장할 수 있다.
나는 한 지인을 기억한다.
그는 퇴직 후 커피숍을 열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었다.
그런데 6개월도 안 되어 문을 닫았다.
입지 선정 실패, 원두 납품 문제, 홍보 부족…
실패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그는 낙심했고,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1년 뒤, 그는 또다시 작은 창업을 시도했다.
이번엔 커피가 아니라 시니어 대상 바리스타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수업 자료로 만들고,
실패담을 솔직하게 나누며
수강생들에게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얻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었어요.
그 실패에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똑바로 본 게,
두 번째 길을 만든 힘이었죠.”
그의 말엔 떨림이 없었다.
그는 실패에서 배움의 용기를 얻은 사람이었다.
저자로서 나 또한
완벽해 보였던 보고서 하나가
고객에게 큰 손해를 줄 뻔한 적이 있다.
그때는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실수를 철저히 복기하고,
같은 실수를 막기 위한 점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오히려 이후엔 고객의 신뢰가 더 깊어졌다.
그때 느꼈다.
실수를 피하려 애쓰는 것보다,
실수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교훈으로 바꾸는 것이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새로운 길을 두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실패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넘어진 그 자리에 다시 설 수 있는 뿌리를 남긴다.
나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어떤 실수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 물음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저자로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실패는 부끄러움이 아니다.
당신이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
2장.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
실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진짜 중요한 건 ‘넘어졌느냐’가 아니라,
‘다시 일어났느냐’이다.
나는 어느 날, 한 신문 기사를 보며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한 60대 후반의 남성이,
은퇴 후 투자 실패로 큰 빚을 지고
모든 걸 정리한 후,
손글씨 캘리그래피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말한다.
“손글씨는 마음을 비우게 해주더라고요.
한 글자씩 정성껏 써내려가면서
내 인생도 다시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지금 그는 공방도 운영하고,
치매센터에서 글씨 쓰기 재능기부를 하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또 한 사람을 기억한다.
한때 잘 나가던 외식업 사장이었지만
코로나 이후 폐업하고,
사기까지 당해 깊은 우울에 빠졌던 지인.
그는 자포자기했던 그때,
주변의 권유로 배달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자존심도 상했지만,
달리면서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어요.
지금은 하루 수십 명의 고객과 짧은 인사로 소통하면서
내가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는 지금,
퇴근 후 동네 청소년 대상 진로 멘토 활동도 하고 있다.
“내가 겪은 실패를 나눌수록, 그게 누군가의 희망이 되더군요.”
실패는 우리를 낡게 만들지 않는다.
포기할 때만, 인생은 무너진다.
오히려 실패는 인생을 새로 쓰게 하는
강력한 붓이다.
저자로서 나는 생각한다.
일어선 사람들의 공통점은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다시 걷겠다’는 마음을 품은 순간,
그들의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당신도 그럴 수 있다.
과거의 실패는 현재를 바꾸는 자원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실패 또한
누군가에게 언젠가 위로가 되고,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이다.
3장. 좌절을 딛고 성공한 나만의 작은 경험들
우리는 흔히 **“성공”**이라 하면
큰 돈을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짜 성공은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 그 순간,
내가 나를 이겨낸 작은 승리 속에 있다.
나는 몇 해 전,
새벽마다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려 했다.
하지만 몇 번 시도하다가
게으름과 자기합리화에 무너지기 일쑤였다.
“이 나이에 무슨 글이냐”
“내 글을 누가 읽는다고…”
그런 마음이 나를 붙잡았다.
그러다 하루는 단 한 문장만 써보자고 결심했다.
“오늘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글을 쓰자.”
그 짧은 한 문장이
나를 다시 앉히고, 펜을 들게 했다.
그렇게 100일,
나는 매일 한 줄씩 글을 남겼고
그 기록을 묶어
지인들에게 소박한 글 모음집으로 나눠주었다.
예상치 못하게 감사의 전화가 왔고,
“내 마음이 위로받았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알았다.
이것도 나만의 성공이었다.
또 하나의 경험이 있다.
은퇴 후 한동안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세무사라는 이름표가 사라지자
나도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 무렵, 동네 복지관에서
‘시니어 인생 강의’ 프로그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신청했다.
첫 강의 날,
떨리는 손으로 준비한 원고를 들고
열 명 남짓한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무대를 열었다.
강의가 끝난 뒤,
한 분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저도 다시 뭔가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 말은 나에게
과거의 어떤 칭찬보다 큰 보상이었다.
내가 다시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좌절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니었다.
작은 성공은 남이 알아보지 않아도 괜찮다.
그건 오직 나만이 아는 내 안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저자로서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도 이미 작지만 위대한 성공을 여러 번 이뤄냈다.
다만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바로 이 순간조차
당신은 다시 일어서는 결단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5부 – 지금 여기서, 당신이 열쇠를 쥐고 있다
1장. 지금 여기서, 당신이 열쇠를 쥐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예전엔 나도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좋은 시절에 뭘 했어야죠.”
하지만 나는 이제 확신한다.
삶을 바꾸는 열쇠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고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손 안’에 있다는 것.
나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분은 76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적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남편과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살아오다
노년에 처음으로 복지관 문해교실에 들어섰다.
글씨를 따라 적는 손이 떨리고
자판 하나 누르는데도 한참이 걸렸지만
그분은 매일 출석했고,
노트에 “나는 할 수 있다”는 문장을 수십 번 적었다.
몇 달 뒤,
그분은 손수 쓴 편지를 큰딸 생일에 건넸다.
“딸아,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딸은 편지를 읽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지금까지 살아온 그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았어요.”
그날 이후,
그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 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랑의 대필 봉사자’가 되었고,
자신의 이름으로 짧은 수필 한 편을 지역 신문에 기고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삶이었지만
그분은 분명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열어간 사람이었다.
그 열쇠는
대단한 능력이나 환경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에서 나왔다.
저자로서 나 역시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
어느 날, 오래된 원고들을 들춰보다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내 글이 누군가의 삶에 등불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날 나는
책상 앞에 다시 앉았고,
지금 이 책을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도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당신도 삶의 방향을 잃고 있다면
과거를 원망하지 말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이라는 문 앞에 서보라.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다름 아닌
당신 마음 안에 있다.
2장. 내가 만든 성공의 기준
“성공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한다.
“돈을 많이 벌고, 남들 앞에 서는 것.”
“사회적 위치가 높고, 이름이 알려지는 것.”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 기준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만든 ‘틀’에
그저 나를 억지로 맞춘 것인가?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세무사로서 이름 석 자로 먹고 살았고,
누가 봐도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삶이었다.
그런데 은퇴 후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회가 인정한 성공이지,
내가 만족한 성공은 아니었구나.”
그 후 나는
나만의 성공 기준을 다시 써보기로 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가족과 함께 먹는 시간이 가장 성공적인 순간이에요.”
또 다른 사람은
“누군가에게 ‘오늘 당신 덕분에 위로받았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껴요.”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확신했다.
성공은 비교나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기준 안에서 완성된다.
이제 독자들에게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당신만의 성공 기준을 만들어보십시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나는 언제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가?
내가 하루를 잘 살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매일 30분 산책하기’,
‘손주에게 웃음을 주는 하루 만들기’,
‘하루 한 번 나 자신을 칭찬하기’,
이런 것들도 훌륭한 성공 기준이 될 수 있다.
내 기준으로 오늘 하루를 잘 살았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다.
저자로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외부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다.
오늘 글 한 편을 쓰고,
마음을 담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내가 선택한 성공의 얼굴이다.
당신도 이제
자신의 삶에 어울리는 성공의 정의를 만들어보라.
작고 소박하더라도
그 성공은 당신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3장. 지금 이 순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 발목 잡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겁을 먹는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지만 정작 우리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시점은
지금 이 순간이다.
나는 어느 날, 이런 문장을 일기장에 적었다.
“내 인생은 오늘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 한 줄이 내 생각을 바꾸었고,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 지인을 기억한다.
그는 한평생 고된 일만 하며 살아오다
70이 넘은 나이에 갑작스레 아내를 떠나보냈다.
큰 충격에 빠졌고,
스스로도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손에 쥐여준 작은 스케치북이
그의 삶을 바꿨다.
“아빠, 매일 아침 마음 가는 대로 그림 한 장만 그려보세요.”
그는 처음엔 막연했지만,
매일 아침 연필을 쥐고
창밖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그의 스케치북은 그림으로 가득 찼고,
주민센터에서 작은 그림 전시회까지 열었다.
그는 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요하고도 찬란한 시작은
바로 그날, 연필을 든 지금 그 순간이었어요.”
마스터로서 나 또한 깨달았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한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우리가 늦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
사실은 가장 빠른 순간일 수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과거를 치유할 수 있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품고 있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다면,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선택하라.
그 한 걸음이
당신을 완전히 새로운 인생으로 이끌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
이 순간에도
당신 안에는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두려워도 괜찮다.
망설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멈추지 않는 것.
저자로서 나는 전하고 싶다.
당신의 인생은
오늘도 새로 시작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당신이 열쇠를 쥐고 있다.
4장.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바꾼다
같은 상황, 다른 인생.
왜 어떤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웃고,
어떤 사람은 풍족한 환경에서도 불안할까?
그 차이는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방향’**에 달려 있다.
나는 한 노인을 기억한다.
그는 평생을 어렵게 살아왔지만
주름진 얼굴엔 늘 온화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에게 “삶이 힘들지 않으셨나요?”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힘들었지요.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하자’
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그 마음 하나가
나를 지탱해줬지요.”
나는 또 다른 사람도 보았다.
그는 모든 것을 갖춘 듯 보였지만
늘 세상에 불만을 품고 살았다.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늘 메말라 있었고,
그 불만은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삶을 결정짓는 건
내가 처한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이다.
마음이 어두우면
아무리 빛이 들어와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환하면
작은 촛불 하나에도 길이 보인다.
저자로서 나는 말하고 싶다.
젊었을 땐 바깥세상과 싸우느라
마음의 방향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가장 큰 전환점은 늘 **‘마음의 자세’**가 바뀌었을 때였다.
실패했을 때도
‘이것도 내게 주어진 성장의 기회다’라고 마음을 돌렸을 때,
사람을 잃었을 때도
‘내가 더 사랑했어야 했구나’라고 돌아봤을 때,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마음이 바뀌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이건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마음의 방향 하나가
인생의 전체 항로를 조정한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탓하고 후회하고 포기하는 쪽인가,
아니면 이해하고 감사하고 도전하는 쪽인가,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무엇이 바뀌길 바란다면,
먼저 마음을 바꿔보라.
그 방향 하나가
당신의 남은 인생을,
아니 지금 이 순간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을 것이다.
5장. 후회 없는 하루가 모여 인생을 만든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명함에 새겨진 직책도, 통장에 찍힌 숫자도
그 순간엔 아무 의미가 없다.
정말 남는 것은 단 하나.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가.
그 하루가 모여
결국 내 인생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80세 생일을 맞이한 날,
자식들 앞에서 담담히 말했다.
“내가 성공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하루하루를 나답게 살려고 애썼고
내가 사랑한 사람들에게
후회 없는 마음을 주려고 노력했어.
그걸로 족하지.”
그 말에 가족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지만
그 자리는 분명 성공의 정점이었다.
나는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내는 날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 나는 내 삶을 사랑했는가?”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날은
비록 크고 대단한 일이 없었어도
내 마음은 충만하다.
진짜 성공은
남들이 보는 방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묻고, 돌아보고,
정직하게 응답하며 쌓아올린 삶이다.
저자로서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면
그만큼 인생도 흐려지고,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내면
그 하루가 인생을 빛나게 만든다.
따뜻한 말 한마디,
고운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여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는 시간…
이런 것들이 쌓이면
그 인생은 후회가 없다.
이제,
당신은 당신만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성공이란 결국,
**후회 없는 하루가 모여 완성된,
온전한 ‘나의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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