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진의 관세이야기] 유사누적기준의 도입을 제안하다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10-10 0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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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현재 WTO를 통해 파악된 지역무역협정 (RTA :Regional Trade Agreement)의 발효 건수는 총 424건이며 이 가운데 상품무역을 다룬 자유무역협정(FTA)은 239건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시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지도자로 인해 잠시 주춤하는 모양새가 나올 수 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크고 작은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확산되어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FTA 하의 비즈니스 핵심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상품무역이 그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즉 FTA 체결국이 원산지인 물품에 대하여 비체결국 물품에 배타적으로 적극적인 관세혜택을 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원산지규정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게 된다. 통상 원산지규정이란 국제무역에서 거래되는 물품의 생산, 제조국을 판정하기 위한 제반 법률 및 규정 또는 판례 그리고 행정적 절차를 통틀어 말하고 있다. ‘협정 대상국 물품인지, 아닌지’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화하여 일반 비즈니스에서 혼동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규정이라고 보면 된다.

 

FTA 수혜의 관건인 원산지규정을 엄격히 만들게되면 역내산으로 인정받기가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비관세 장벽이라고 대놓고 언급하진 않지만 그 자체가 복잡성, 차별성 등의 이유로 무역장벽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실레로 한-미 FTA에서는 중국 원단을 들여와 의류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 우리나라 원산지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FTA 특혜를 받지 못하는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이러한 원산지규정에 부합하게끔 원재료 및 부품의 조달 방법, 협력사 관리, 생산방법과 그에 따른 생산시설의 구비 등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게 된다. 원산지규정이 그 기업의 경영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는 원산지규정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국내 민감산업을 보호하고 교역 및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중요 변수가 되기도 한다.

 

기술한 바와 같이 FTA의 상품교역에 있어 원산지규정은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인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규정이 체결된 FTA마다 통일됨이 없이 모두 다르게 제각각이라는 데에 있다. 일찍이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바그와티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잘 섞어놓은 스파게티 가락처럼 얽히고 섥혀있다고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엄격한 FTA 원산지규정 하에서는 기업들이 세부규정들을 모두 충족시키기가 어렵고 따라서 발효된 전체 협정에서 요구하는 기준 중에서 교집합을 추출하여 그에 맞게 경영 시스템을 만들기가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원재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자원빈국 아닌가. 근본적으로 거의 모든 원재료는 수입산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어렵게 되는 이유이기도하다.

그래서 원산지규정 중 누적기준의 활발한 연구와 이의 적용이 우리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는 고리타분한 원산지기준이 일반기준과 품목별기준이 있고 일반기준에는 분야별 특례가 있다는 등의 얘기는 피하고자 한다. 이해에 어려움이 없는 이상 누적기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이를 어떻게 우리가 진일보하게 발전시켜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도록 한다.

 

누적기준(accumulation)이란 일방을 원산지로 하는 물품이나 재료가 협정 상대국의 물품에 포함되거나 결합되는 경우 그 물품이나 재료는 상대국의 원산지인 것으로 인정하는 규정이다. 즉 미국과의 FTA에서 미국산 수입재료로 한국에서 상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할 때 미국산 수입재료를 한국산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회원국 중 가장 저렴한 국가에서 원재료 구매 및 무관세 수입하여 완제품을 생산하여 이를 다른 아세안 회원국으로 수출할 경우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된다.

 


누적기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누적영역과 누적대상에 따라 구분 누적기준의 종류에는 첫째, 누적영역에 따라 양자 누적, 완전누적, 유사누적(교차누적)이 있다. 양자 누적은 다시 협정국의 수에 따라 양국누적과 다국 누적으로 나눠지는데, 양국누적은 협정 당사국 양쪽 모두 1개국인 경우를 말하며, 다국누적은 말 그대로 한쪽 또는 양쪽 당사국이 여러 국가인 경우의 누적으로서 한-아세안 FTA와 같은 형태를 의미한다. 

 

이 중에서 완전누적은 FTA 협정에 의해서 창설된 전체 특혜지역은 영역 규정에 따라 하나의 누적영역으로 간주되어 당해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작업 또는 가공공정에 대해서 원산지 자격을 부여하는 기준이다. 동 기준은 다자무역협정인 RCEP, 한중일 FTA, TPP 등에 유의미한 것으로, FTA 특혜를 극대화하고 업체의 원산지기준 적용을 위한 비용을 최소화하며, 원산지검증을 위한 기관의 절차를 간소화할 뿐만 아니라, 인건비 감소를 위해 공정만 확인하면 적용이 가능한 것으로 누적 기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지만, 현재 미국의 TPP 탈퇴 등으로 본 기준의 도입은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유사누적은 체약당사국이 아닌 특정 국가로부터 FTA 체약국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대하여 역내 부가가치로 계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회원국이 ‘아닌’ 일정 국가들에 의해 공급된 재료도 일정 조건 하에 역내산으로 간주하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FTA 원산지규정에서 흔하게 채택되지는 않았 으나 우리나라와 같이 대부분의 원재료를 수입하여 완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형태에 적합한 기준이다. 다음으로 누적대상(투입요소)에 따라 부가가치누적, 재료누적, 공정누적 등이 있다. 부가가치누적은 역내 발생 부가가치를 모두 더하는 것이고, 재료누적은 협정 상대국의 원산지 재료를 국내산 재료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공정누적은 상대국에서 이 루어진 공정을 국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유사누적기준 도입의 필요성
우리나라는 2003년 ‘FTA 추진 로드맵’에 따라 동시다발적이고 포괄적으로 FTA 협상을 벌인 끝에 2017년 9월 현재 한-칠레 등 15협정이 발효되어 있고 중미(6개국)4)과도 타결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기타 한중일, RCEP(16개국)5), 에콰도르 및 이스라엘과도 협상 중이다. 단연 FTA Hub 국가라 해도 손색이 없을만 하다.

 

그러나 FTA는 양자가 개별 협정으로 체결한 것으로 어떠한 협정이 다른 협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즉 당 협정 체결국 이외의 국가에서 수입된 중간재 및 원재료를 이용하여 최종재를 생산하더라도 다른 협정에서는 원산지 인정이 어렵다는 얘기이다. 여기서 유사누적기준의 도입 필요성이 나오는 것이다.

 

▲<자료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EU에서 시작된 PAN-EURO 누적시스템의 유사누적 규정은 국토가 작고 부존자원이 충분하지 못한 EC 회원국들이 EC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변국들로부터 값싼 원재료와 부품을 조달하여 생산하는 글로벌 소싱 및 생산구조를 갖추려는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발효되어 이 부분의 개정이 있어야 지금 얘기하는 유사누적기준을 도입할 수 있지만, 한-호주-뉴질랜드-아세안의 누적시스템을 예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아세안, 호주, 뉴질랜드는 이미 각각 FTA가 발효되었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아세안과 FTA가 발효된 상태로서 협정에서 유사누적기준을 허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아세안 국가에서 원재료 또는 중간재를 수입하여 이를 완제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한 후 호주 또는 뉴질랜드에 수출할 때, 아세안 국가로부터 수입한 원재료를 우리나라 원산지로 보아 손쉽게 역내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한 경우로서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아세안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은 각각 아세안과 FTA를 체결한 상태이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아세안이 체결되어 있고 일본과도 협상 중이므로 아세안을 역내로 포함하는 유사누적기준의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아세안이 한국의 중간재 부품을 원재료로 하여 생산한 제품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경우 한국산 부품을 역내산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간재를 주로 생산하는 우리 중소기업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FTA에서는 아직 유사누적기준을 보수적인 이유로 도입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다른 협정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나라마다 산업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1997년 이미 PANEURO 누적시스템을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유사누적시스템에 대한 경제적 효과는 검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 즉 부존자원이 부족한 EC 회원국들이 EC제품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인근 국가들로부터 경쟁력 있는 원재료와 부품을 공급받아 생산하는 글로벌 소싱과 생산체계의 구축은 이미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그 적용지역이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완전누적이 어떻게 보면 누적기준의 이상(理想)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TPP, RCEP 등
MEGA FTA의 후퇴 또는 보합(保合)으로 그 실현이 요원해 보인다. 따라서 이미 체결되었거나 협상 중인 FTA에 유사누적기준의 도입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FTA 활용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소싱 체계 등에 급격한 변환을 주기에는 기타의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으므로 꽤 시간이 걸리고, 어쩌면 FTA를 포기하면서까지 기존의 시스템을 고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글로벌 소싱 시스템은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고 FTA 활용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이상적이며,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유사누적시스템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와 교역이 있는 대부분의 나라와 FTA를 체결한 자칭 FTA Hub국가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유사누적기준의 도입은 더더군다나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원재료, 부분품의 외부조달 비율이 매우 큰 우리의 경우는 더한 것이다.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결론적으로 정부는 유사누적기준이 우리 경제활
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하며 이에 대한 연구와 준비자세가 필요하다. 그 연구결과를 토대로 유사누적기준을 협정문에 추가시키는 개정협상을 하여야 한다.

 

작금 우리의 수출규모가 이전과 달리 꽤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수치에서 자칫 오해의 씨앗이 나와 현상을 그릇되게 판단할 수 있음을 조심해야한다. 통계의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방심하지 말자는 것이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의 트렌드에 맞춰 반도체가 늘어난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동안 사업의 포기까지 갔지만 기간산업으로서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 생존시킨 조선산업이 일시적(?)으로 살아난 것의 결과일 뿐이다.

 

자동차를 비롯한 기타의 산업은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또한 국제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란스럽다. 그 피해의 직격탄은 고스란히 우리 기업이 맞고 있는 현실이다. FTA 협정문 하나 달라진다고 우리 경제가 나아진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 경제 구조를 잘 반영한 기준 하나가 어쩌면 큰 변화와 활력을 줄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글/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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