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갑질’ 불용시대(不容時代)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8-09 17: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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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갑질’ 문화 청산을 위한 여론흐름 맨 앞에 문재인 대통령이 깃발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모든 부처 차원에서 갑질 문화를 점검하라”고 지시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다음날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내각이 철저한 점검과 구체적인 쇄신책을 마련하라”고 하명했다. 모든 부처가 즉시 소관 공관과 관저, 부속실 등에 부당한 지시와 처우가 있었는지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미상불, 대한민국은 당분간 ‘갑질’ 문화 청산 신드롬에 빠질 것 같다.
대한민국은 당분간 ‘갑질’ 문화 청산 신드롬에 빠질 듯
‘갑질’ 문화의 폐해는 그 동안 산업계에서 간간이 불거져왔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 김만식 몽고식품 회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정일선 현대 BNC스틸 사장은 운전기사에 대한 폭행과 폭언이 폭로돼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직원에 대한 폭언, MP 그룹 정우현 회장의 경비원 폭행, 최호식 호식이 두마리 치킨 회장의 성추행 사건 등도 만만치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 프랜차이즈 본사 약 4천800개와 대리점 약 70만개 및 대리점 단체를 대상으로 대리점거래 실태조사에 착수한단다. 과거에도 공정위와 지방자치단체의 대리점 거래에 대한 조사가 있었지만 모든 산업을 총망라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자동차ㆍ유제품ㆍ주류ㆍ위생용품ㆍ아웃도어 등 본사와 대리점 간 거래가 있는 모든 산업이 대상이다.
‘갑질’ 문화에 대한 지탄 불똥 군문(軍門)까지 번져
산업계에서 유독 ‘갑질’ 문화가 고약하게 깊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돈’이 으뜸권력으로 변한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이 전래돼온 한국사회의 반상(班常) 신분차별 의식과 뒤범벅이 돼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재벌들이 “국가와 유착돼가면서 군사정권의 병영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공장을 군부대처럼 운영하는 등 독재국가와 닮아갔기 때문”이라는 박노자 교수의 견해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갑질’ 문화에 대한 지탄 불똥은 군문(軍門)까지 번졌다. 상하 관계가 분명해 ‘명령’과 ‘복종’이라는, 어쩌면 반이성적인 시스템으로 ‘국방’이라는 더 큰 가치의 이성을 구축해내는 군대는 특성 상 ‘갑질’로 분류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군대 갑질의 시범케이스로 떠오른 사례가 바로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이다. ‘공관병 갑질’이라고 명명된 박 사령관 부부에 대한 비난 여론의 모다깃매는 가히 멍석말이 수준이다.
박 사령관 내외가 공관병들에게 한 비인격적 언행 가관
박 사령관 부부의 공관병 갑질 논란은 염천(炎天)보다도 더 뜨겁다. 상상을 초월하는 하인취급 행태가 연일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국방의 사명을 띤 병사가 지휘관의 사유 노복처럼 취급됐다는 사실은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이번 일이 그릇된 군(軍)문화를 일신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다만 문제를 지나치게 키워 군의 명예는 물론 기본질서마저 해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는 공관병을 몸종 부리듯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대장) 부부에 대해 “주장에 엇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다”는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박 사령관과 부인이 번갈아가며 사법기관의 조사에 불려 다니며 오만 망신을 다 당하고 있다. 국방부 조사 결과를 보면 박 사령관과 그의 부인이 공관병들에게 저지른 비인격적인 언행은 가관이다.
군 고위간부의 삐뚤어진 행태, 이들만의 일 아닐 수 있어
박 사령관의 부인은 공관병 손목에 호출 벨을 차게 하고 아들 빨래를 시키는가 하면 텃밭농사에까지 동원했단다. 또 부엌칼을 도마에 내려쳐 위협을 가하고, 뜨거운 전을 얼굴에 던지기도 했다. 심지어 요리를 못한다고 부모까지 흉보는 식의 비인간적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박 사령관도 공관병에게 골프공을 줍도록 했다. 부인의 횡포는 지난해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귀에까지 들어가 경고까지 받았지만 멈출 줄 몰랐다.
이들의 횡포에 시달리던 한 공관병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주장 등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공관병을 마치 사노비처럼 부린 일은 자식들을 군문에 보낸 부모들에게 뜨거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군 고위 간부의 삐뚤어진 행태는 비단 이들 부부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지휘관 공관병의 임무는 공관 시설 관리나 지휘통제실과 연락 유지 등 공무가 중심이다. 가사도우미처럼 집안일을 도맡는 게 아니다.
효율을 명분으로 권리남용을 허용하던 시대 완전히 지나가
공관병에게 한밤 중 술상을 차리게 하고, 대학원 과제를 대필시키고, 관용차를 가족용으로 쓰고, 운전병에게 딸 집 커튼까지 달아주도록 하는 등 그 동안 유사한 물의가 잇따르는 것을 보면 이 문제는 군 내부의 고질적 병폐인 게 분명하다. 개중에는 과거에는 용인되던 일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 더 이상 군문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에게 아픔을 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문제를 너무 침소봉대(針小棒大)해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등 군문이 갖는 특수성마저 흠집 내는 사태로까지 번지도록 하지는 말아야 한다. 옥석을 가리고, 파장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 효율을 명분으로 저지르는 규칙을 벗어난 권리남용을 일정부분 허용해오던 시대는 이제 완전히 지나갔다. ‘인권’은 하늘이 준 것이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훼손할 수 없는 지엄한 권리다. 생각을 바꾸지 않고, 가치관을 바로 세우지 않는 사람은 이제 설 땅이 없는 세상이 됐다. 또 다른 차원의 ‘민주화’는 그렇게 지름길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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