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형 칼럼] 국세당국의 적극행정, 과연 적극적인가
- 납세자권익 뒷전인 세무조사 현장
조사요원 불통에 손드는 납세기업
결제라인 고정관념 세수가 선순위
기본정신 흐릿한데‘적극’이 뭔 소용 - 심재형 기자 | shim0040@naver.com | 입력 2024-05-08 09: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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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엊그제, 국내 최초로 ‘해마(海馬)주’를 개발하고도 해외시장 진출 방법을 찾지 못해 제품출시를 포기한 지역특산주 제조업체의 고충 민원을 적극 해결해줘 수출 길을 터준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해마주’ 제조사는 수출 목적으로 주류제조장이 위치한 여주지역 농산물인 쌀, 고구마, 바질이 주원료이고 제주산 ‘양식 해마’가 첨가된 해마주를 많은 투자와 노력 끝에 개발했다. 해외 구매자의 요청에 따라 약용성분이 뛰어난 ‘해마’를 상표에 표시하는 것이 수출에 있어 핵심 포인트가 되었으나, 상표에 ‘해마’를 표시하면 첨가물인 해마가 지역특산주의 제품 특성을 나타내는 주원료로 분류될 수 있고, 이 경우 해마주는 인접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술이라는 지역특산주 정의에 부합하지 않게 되어 지역특산주로 제품을 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국세청은 수출 예정인 주류에 대해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상 ‘해마주’를 상표로 사용 가능한지 여부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판단, 지역특산주 관련 법령과는 별도로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상의 상표 관련 조문과 ‘주세사무처리규정’을 ‘적극 해석’하여 수출하는 주류에 대해서는 ‘해마’를 상표에 사용할 수 있다고 결론, 해당 주류를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국세청이 밝힌사실 그대로 지역특산주 관련 법령과는 별도로, 여러 관계법령을 동원하는 등의 '적극 행정'으로 수출의 길을 찾아준 것이다.
우리사회에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시절, 지방 양조장 주인들에겐 관할 세무서장이 ‘큰 상전’이었다. 공적인 일로 서장실을 방문할 경우에도 서장실 천정(天井)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나올 정도였다. 머리 조아리고 들어갔다가 허리 굽히고 방(房)을 나오니 천정 쳐다 볼 겨를이 없었음이다. 양조장내 사소한 시설 하나 손보는 일에도 인허가 관청인 세무서장의 승인이 필요했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렇듯 하대(?)를 받던 주류제조업체가 국세당국의 관심과 도움으로 막혔던 수출의 길을 뚫었다니 '적극행정'의 고마움과 함께 금석지감을 느낀다.
현재 국세당국의 ‘적극행정’은 세정 각 분야에 걸쳐 야심차게 운영되고 있다. 특히나 조사행정 분야에서의 적극행정은 납세기업들의 지대한 관심꺼리다. 하지만 정작 화급히 시정돼야 할 납세자권리침해 사례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납세권(圈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세무조사 현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누락소득을 추징하려는 과세권자와, 자신의 재산권을 방어하려는 납세자가 부딪치며 나름의 논리싸움으로 불꽃을 튀긴다. 때론, 마른걸레 짜듯해야 직성이 풀리는 결제라인과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조사요원들이 어우러져 납세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케도 한다. 납세자들은 쟁점부문에 대해 쌍방 자유로운 논쟁을 원하지만, 조사요원들의 불통에 손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척이나 연(緣)을 중시하며 살아왔다. 인지상정이라고 세무조사를 당하는 납세자들은 일단 생사기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때로는 조사요원들의 외고집 불통이 연을 불러드린다. 혈연, 지연, 학연 등 모든 연을 총동원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위법을 정당화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기 논리의 정당성 관철을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 수단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사적인 연에 좌지우지될 조사요원이 아니겠지만, 조사파트 관리자들에겐 특단의 ‘조정력’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세정의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세원 말살을 막을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일이야 말로 관리자들의 몫이다. 그러기에 국세행정 수장의 세정철학이 분명해야 세무조사 결제라인의 의식변화를 기대할 수 있으며, 결국은 조사행정의 격을 높일 수 있다.
어느 세무대리인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그는 고객의 세무조사 대리인으로서 지방청 조사국을 집요하게 드나들며 과세여부를 놓고 조사요원과 날선 공방을 펼치기를 십 여회―, 쟁점부분에 대한 합당한 논리마저 막무가내 귀를 막던 그 조사요원, 끝내는 납세자 주장을 수용한다. 그 내용을 글로 소개할 일은 못되지만, 과세여부를 놓고 논쟁을 펼쳤던 쟁점부문은 웬만한 소신 없이는 ‘일단 과세→조세심판원 행(行)’으로 결론이 났을 사안이다. 조사공무원들이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납세자를 대할 경우, 일차적으로는 그 직원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만 더 나아가서는 국세행정, 궁극적으로는 국가에 감사하게 된다.
적극행정이란 공무원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세당국 입장에서의 적극행정은 조문(條文) 해석이 애매모호한 세법의 경우, 자구(字句) 해석에만 집착하기 보다는 납세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제를 운영함으로서 납세국민의 권익을 최우선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적극행정이다. 그런데 적극행정의 근본이 흔들린다면 ‘적극’이 뭔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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