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장난질’과 ‘이간질’ 사이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9-29 10: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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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자. 일본이 다시 일어나니 조선은 조심하자’ 1945년 해방 당시 시중에 떠돌던 구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특성과 주변강대국의 음흉한 기질을 직시하여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캠페인 의미가 담겼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식민지로 살던 때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 

 

남한은 미국을 믿지 않으면 온존을 담보할 수 없는 입장이 됐다. 북한은 중국과 소련에 기대어 핵무기를 들고 남한을 타고 넘어 온 세계를 향해 협박하는 중이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교집합 안에서 북한을 껴안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장난질’은 멈출 줄 모른다. 2차 대전 패전국의 처절한 참화를 딛고 일본은 경제대국이 되어 또다시 ‘이간질’을 일삼으며 시나브로 국수주의(國粹主義) 침략기질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향한 트럼프의 거듭된 ‘destroy(파괴)’ 용어 범상치 않아 

 

북한과 미국의 ‘말 대포’ 전쟁이 심상찮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유엔 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완전파괴(totally destroy)’ 으름장을 놨다. 북한은 ‘개 짖는 소리’라고 맞받아쳤다. 미국의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은 서로를 ‘리틀 로켓맨(Little Rocket Man)’과 ‘늙다리 미치광이’로 비아냥대고 있다. 와중에 ‘죽음의 백조(swan of death)’로 불리는 미국의 전략 폭격기가 휴전선 최북단 북한영토 입구를 비행했다. 

 

북한이 미국의 언행을 ‘선전포고’라고 주장한데 대해 트럼프는 26일 “만약 (군사)옵션을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할 것이고, 그것은 북한에 ‘대단히 파괴적(devastating)일 것’”이라고 또다시 경고했다. 트럼프가 북한을 겨냥해 잇달아 사용하는 ‘파괴’를 의미하는 ‘destroy’, ‘devastating’ 같은 단어가 범상치 않다. 북한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을 전후해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위 ‘10월 전쟁설’까지 나돌고 있는 판이다.


北核, 돌연변이 독재국가 지배자가 살기 위한 운명적 카드

 

‘방귀가 잦으면 X이 나오기 마련’이라는 옛말이 있다. 말이 너무 많으면 소란스러워진다. 소란은 불안을 야기하고, 불안은 충돌위험성을 높인다. 북미간의 말싸움 신경전이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는 양상인 것이다. 해방 이후 우리는 남북이 갈라져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남한은 미국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북한은 김일성 왕조국가를 완성해 엄격한 통제 속에 아사(餓死)마저 빈발하는 빈곤국가로 전락했다.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으뜸요인은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돌연변이 독재국가인 북한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지고 있는데, 철의 장막 속에 말도 안 되는 무소불위 권력을 독점하자니 생겨난 것이 ‘핵보유국’ 망상이다. 북한의 ‘핵’은 사악한 사이비종교의 통치시스템을 존속시키기 위한 최악의 선택이었다. 인민들을 굶겨죽이면서도 지배자가 살자고 죽자 사자 거머쥔 운명적 카드였던 것이다. 

 

‘장난질’ 일삼는 중국, ‘이간질’ 획책하는 일본 행태 여전 

 

정말 안타까운 것은 북한의 선택이 우리민족에게 끼칠 치명적인 불행을 뻔히 알면서도 끊임없이 ‘장난질’을 일삼아온 중국과, ‘이간질’을 획책하는 일본의 행태다. 장구한 세월 상국(上國) 노릇을 하며 한반도 처절한 민생의 피를 빨아온 중국이나, 아예 나라를 집어삼켜 수탈해온 일본의 만행은 이가 갈리도록 분통 터지는 서러운 역사다. 그런 살벌한 이웃 국가들이 또다시 뭔가 또 빼앗아 먹을 게 없나 입맛을 다시고 있는 흉측한 몰골이다.   

 

미국 정부가 26일(현지시간) 북한 은행 10곳에 대해 무더기 제재를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에 가까운 대북 독자제재 행정명령(13810호)에 서명한 지 닷새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첫 이행 조치다. 그런데 중국이 새로운 유엔 대북제재 결의 직전, 북한산 석탄 수입중단을 선언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북한에서 1억3천800만달러(약 1천570억원) 규모의 석탄을 수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북한의 ‘핵개발’에 방조.묵인 넘어 은밀 지원 가능성

 

입으로는 북한을 말리는 척하면서 뒷주머니를 채워주는 악착같은 중국의 ‘장난기질’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또다시 입증된 것이다. 지구상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할 나라는 중국뿐이라는 분석은 아직 유효하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한반도 평화’를 되뇌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의 핵 개발을 방조하거나 묵인했다. 아니 어쩌면 말리는 척 하면서 은밀히 도왔을 수도 있다. 북한을 변경(邊境)의 방패막이쯤으로 여기는 중국의 기류는 여전히 살아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이후 일본의 행보를 보면 얄밉기 짝이 없다. 북핵 해법을 위한 한·미 간 메신저 역할을 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두 나라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 얼마 전 후지 뉴스 네트워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화를 구걸한다’, ‘거지같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한·미 정상 간의 불협화음을 부채질함으로써 미·일 간의 우의를 더 다져 보겠다는 정언(政言) 합작의 저열한 꼼수로 읽힌다. 

 

한국, 분열.갈등 해결 지혜 터득 못한 게 치명적 하자 

 

지정학적인 악조건을 지닌 한 국가가 주변국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고 번듯하게 사는 일은 지난하다. 그러나 우리는 스위스라던가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이 그 험난한 여건 속에서 당당하고 힘차게 나아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분열이 있고, 이해관계를 놓고 벌이는 다툼이 없지 않을 것이다. 긴 세월 강대국의 ‘개구리밥’ 처지를 모면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치명적인 하자는 무엇일까. 

 

바로 분열과 갈등을 슬기롭게 소화하고 해결하는 지혜를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한다지만 선진정치는 아득하다. 승자는 패자를 짓밟으려고 들고, 패자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섬에 스스로 갇혀버린다.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할 뿐’이라는 주장은 참일까. 1945년 해방 당시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위태로워진 한반도의 형편이 민생을 짓누른다. ‘중국을 믿지 말고 북한에 속지 말자. 일본이 다시 일어나니 한국은 조심하자’ 그런 유행어가 나돌고도 남을 절박한 상황 속에서 허허롭기 짝이 없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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