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석 에세이] 당신의 총량은 얼마나 남았는가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10-19 10: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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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평생 벌 수 있는 돈의 양이 정해져 있을까요? 내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이룰 수 있는 수준은 정해져 있을까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몇 해 지나지 않아 거지가 되어버린 사연들이 종종 세간의 관심을 끈다. 화수분처럼 우리에게 무한정 허용된 것은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으로 탐하면 자연은 그에게 혹독한 대가를 지불한다. 사람에게는 각각 그에게 맞는 총량이 주어진다. 병든 부모에게 무한정 효도를 다 하는 자녀도, 우리 몸을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죽을 때까지 건강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건강총량의 법칙
제가 알고 있는 젊은 사람 이야기를 해보겠다. 몸집은 제법 크다. 운동을 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살을 빼기 위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살은 빠지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이 친
구가 마라톤의 진미를 알아버린 것이다. 그에게 소위 ‘러너스 하이’가 온 것이다.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다 결국 관절에 무리가 왔다. 당연히 관절치료를 위해 입원했다.


우리 몸은 러너스 하이를 원하는 게 아니다. 러너스 하이는 달리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 우리 몸이 스스로 보호하는 작용이다. 우리 몸은 식스팩 복근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적당한 운동을 원하는 것이다. 100년 동안 사용해야 할 관절을 1년 동안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절단을 내버린 것이다. 10일 동안 먹어야 할 음식을 이틀 동안 먹어 치우고 8일 간은 쫄쫄 굶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강의 총량을 이렇게 빨리 소진시키는 것은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섭생도 같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각종 오염물질을 먹고 살고 있다. 나쁜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서 집에서 조리한 음식만 먹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오염물질이 있다. 방금 플라스틱 조리기구를 사용하여 만든 음식물을 플라스틱 용기에 넣은 것이다. 여기에 정크 푸드(이게 우리말로는 쓰레기 음식)와 각종 첨가제로 만든 과자류를 더 먹는다. 입이 궁금하다.100년 사용할 몸을 이런 식으로 해서 70세로 끊어버리거나 100세까지 살더라도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누가? 내가.


효심총량의 법칙
늦은 나이에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를 쓴 고광애 씨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70세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서럽게 울었지만 93세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무덤덤했다고 말한다. 왜였을까? 아버지가 70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운 것이 아니고, 어머니는 살 만큼 살다 93세에 돌아 가셨기 때문에 무덤덤한 것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해드려야 할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돌아가셔서 슬픈 것이고, 어머니에게는 할 만큼 해드렸기 때문에 무덤덤했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에게는 아직도 못다 한 효심이 남아있고, 어머니에게는 그런 효심이 다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부모에 대해 갖는 효심은 무한한 것일까? 고광애 씨의 말처럼 효심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이런

저간의 정서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효심은 부모님의 나이와 함께 고갈되어 갈 것이다. 부모가 병들어 오랜 기간 동안 병수발을 하는 상황이라면, 자녀와 부모가 사사건건 부딪히며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만

큼 효심도 빨리 닳아 없어질 것이다. 나중에는 효심은 없어지고, 의무감으로 부모를 모실지 모른다. 봉양도 아닌 부양으로 말이다.

 

옛날에는 손주를 볼 정도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부분 돌아가셨지만, 지금은 손주가 아이를 낳아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정하다. 그러니 이제는 손주가 조부모와 같이 늙어가는 시대가 되었다. 자녀의 효심이 다 닳아 없어졌는데도 자녀의 효심을 바란다면 양쪽 다 불행한 일이다. 자녀를 불효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에게 남아 있는 효심을 오래도록 유지시켜주면 된다. 어떻게?

 

자녀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로 돈이 있어야겠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해 내 몸을 자녀에게 맡기는 일도 없어야 한다. 돈과 건강만 해결되면 될까? 아니다. 심리적으로도 자녀에게 의지

하지 않아야 한다. 나 홀로 견딜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건강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이제 부모는 자녀와 독립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독립하면 자녀의 효심총량이 급속도로 소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당신의 자녀를 불효자로 만드는 일은 없다.

 

재화총량의 법칙

 

조영석 부천대 교양학부 교수
돈을 쫓으면 돈이 도망간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면 돈은 자연히 따라 온다고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하나는 맞는 것 같다. 돈은 벌고 싶다고 해서 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나이 들면서 제가 느낀 것은 자기에게 맞는 그릇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용량이 적은 사람이 채워 넣으면 넘치게 되고, 그러면 결국 몸을 망치게 된다. 이건 좁은 입구와 넓은 출구가 맞붙어 있는 꼴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자족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사업가가 복권에 당첨이 된 일이 있었다. 영국에서 18세 여고생 역시 복권에 당첨된 일이 있었다.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실은 같지만 이후의 삶은 많이 다르

다. 여고생은 신용불량자가 되어 미성년자에게는 복권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복권판매회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참고로 복권회사는 복권을 팔았지 소녀를 직접 신용불량자로 만

든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을 하던 사업가는 복권 당첨으로 받은 돈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돈에 대한 자신의 그릇은 그 돈을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가지

고 있는 재산은 당신이 돈을 요리할 수 있는 총량 값이다.

 

돈에 대한 내 그릇을 확인했다면 오히려 다른 데서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 더 유효하지 않을까? 사실 돈이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나에게 주어진 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말이다. 부족한 것을 꼭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걱정만 가득 찰 것이다. <글/ 조영석 부천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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