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시대 · 노후준비의 함정
- 노년의 향기,통증의 결과로 얻어지는 성숙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2-27 11: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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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부천대 교양학부 교수 |
노년에 겪는 유지의 문제는 천천히 내면화된다. 세상을 살아온 연륜과 그 안에 잘 다져진 인품이 밖으로 드러나는 거다. 젊은이가 돈을 들여 성장(盛裝)함으로 멋을 뽐낸다고 하면 노년에는 감출 수 없는 성숙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이란 게 있을까. 젊은이가 기품이 있는건 생소하다. 늙은이가 팔팔하게 움직이면 눈에 띨 일이다. 젊은이는 젊은이답게 싱그러우며 늙은이는 나이든 만큼 기품을 유지한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 하나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A/S 센터에 전화하면서 먼저 ‘수고하시네요.’ 이런 인사를 건네는 게 그렇게도 어려울까.
길을 알려준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얼굴 표정을 짓는 게 그렇게도 힘든 일일까. 노년의 아름다움이란 별거 아니다.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그 뿐이다. 그 따뜻한 마음은 그 사람의 기품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런 공간 하나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착하게 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지는 게 아니다. 착하게 사는 것도,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평생을 연습해서 노후에 기품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지 늙어서 기품 있게 살겠다는 다짐만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
18세기 불란서 작가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Antoine François Prévost, 1697년~1763년)는 우리에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일러준다. ‘부부를 맺고 있는 고무줄이 오래 가려면 탄력이 좋은 고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탄력성 좋은 고무줄은 부부 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필요하다.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는, 귀찮거나 손해가 나는 일이라도 기꺼이 감수하는, 그런 성숙한 사고가 기품 있는 노년을 만든다.
이런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윽한 향기가 난다. 그런 향기가 나는 사람을 이웃으로 둔 사람한테도 역시 같은 향기가 난다. 꽃이 때로는 따뜻한 햇볕으로, 때로는 거친 바람으로, 때로는 흥건히 젖을 정도의 비로 오랜 세월 동안 인고의 결과로 향기를 내듯이, 사람도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소태처럼 쓴 풍찬 노숙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갈 때 그 향기를 낼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감성적인 행복이 아니라 성숙이다. 성숙한다는 말 에 붙어있는 말은 통 증이다. 통 증 없는 성숙은 불가능하다.’
서울대 윤대현 교수가 그의 저서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에서 말한, ‘통증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성숙’에 진정으로 동의한다. 진주 없는 조개의 아픔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송년모임이 있었다. 좌석이 파하기 전에 조금 일찍 나왔다. 약령시장에서 706번 버스를 탔다. 시간이 늦어서 일까?(밤 10시쯤) 버스 안이 많이 복잡했다. 뒤편에 가서 기둥을 잡고 섰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문제가 생겼다. 창가에 남학생은 그냥 고개를 들고 앉아있는데,
내 바로 앞에 여학생은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있었다.
정류소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타고 내리곤 하는데…. 학생의 머리는 그대로 파묻힌 채 가고 있었다.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고개를 들어도 되는데…. 나는 서서가도 괜찮은데. 내 나이 일흔 살, 요즘 세상에 뭐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데, 등산도 곧잘 다니는데, 야경도 보고, 좋기만 한데. 학생은 매일 힘들게 공부하고,
나는 매일 먹고 노는데. 학생이 훨씬 피곤할 텐데, 나는 정말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고, 이제 그만 고개를 들라고 하지도 못하고…. 자꾸자꾸 미안해졌다. 옆에 앉은 남학생에게도 미안해졌다. 나이 많은 게 미안해졌다.
예뻐 보이려는 노력이 비난 받아서는 안 된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30대가 되어도 결혼을 못하고 있으면 집에서도 거의 포기 상태였다.50세가 되면 완전히 아저씨였고 60세가 되면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됐다. 지금과 같은 100세 시대에 과거 60세 기준의 패턴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종전 60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을 나이지만 지금 60대는 앞으로도 40년은 더 살 수 있는 나이다. 그러하니 지금 60대가 종전 60대와 똑같은 생각을 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중년 또는 노년이 젊게 생각하고 건강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100세까지 산다면서 60세를 넘겼다고 추레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년이 되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우라고 말한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내면의 아름다움’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드러나 보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은 첫인상을 매개로 구현된다. 인지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첫인상은 5초 안에 결정된다고 한다. 5초 안에 저 여성 혹은 남성에게 애프터를 신청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심리학과 알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교수는 1971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Silent Messages’에서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를 판단하는데 작용하는 것들은 시각이 55%, 청각이 38%, 언어가 7%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의상이나 표정, 자세, 몸짓, 헤어스타일, 목소리의 톤이나 음색,말의 내용 등으로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메라비언의 법칙(The Law of Mehrabian)’이라고 한다(이에 대하여 논란이 있지만 우리 주제가 아니다). 시각과 청각으로 첫인상의 90% 이상이 결정된다고 하니 첫인상이란 대단히 직관적이다. 직관적 첫인상은 선택으로 보상받는다. 시각적 우월성은 외모지상주의와 결탁되었고, 이 시각적 우월성에 대한 선호는 외모를 중요한 경쟁력이 되게 하였다. 이로써 내면의 아름다움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시각적 또는 청각적 감각에 의한 판단은 직관적이어서 시간과 노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 이를 판단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외향적인 것에 더 집중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런 외향적인 것에 대한 선호는 어떻게 나타날까. 젊은이에게 주어진 과제는 ‘선택의 문제’고, 노년에게 주어진 과제는 ‘지속의 문제’다. 예를 들어 젊은이는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배우자로 선택 받는 문제가 있다. 젊은이의 선택의 문제는 시각적이나 청각적 우월성에 근거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메라비언의 법칙은 그대로 타당하다.
반면 중년 또는 노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선택의 문제는 줄어들고, 종전의 결과물을 유지, 보수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그러니까 지속의 문제가 관심이다. 이 지속의 문제는 자신의 젊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표출된다. 선택보다는 지속이 더 어렵고 간절한 법이다. 그래서 주름을 펴기 위해 보톡스 시술을 받거나 옷과 머리 모양을 젊게 한다. 옛날 노인보다 30~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지금의 중년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노년에 겪는 유지의 문제는 천천히 내면화된다. 중년과 노년에는 젊음은 줄어들지만 그 빈자리에 젊은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성숙한 아름다움이 자리한다. 세상을 살아온 연륜과 그 안에 잘 다져진 인품이 밖으로 드러나는 거다. 젊은이가 돈을 들여 성장(盛裝)함으로 멋을 뽐낸다고 하면 노년에는 감출 수 없는 성숙한 아름다움이 있다.
젊어도 자신감 없는 어투나 건들거리는 걸음걸이가 있는가 하면 중년도 경쾌한 걸음걸이와 45도 각도의 멋있는 신사와 숙녀가 있다. 그래서 ‘밝은’, ‘호감 가는’, ‘단정한’ 외모를 하고 있으면 좋겠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단아하게 차려 입은 옷 그리고 감출 수 없는 인품을 가진 중년, 노년, 어디 없소? 매화는 스스로 고개를 들지 않아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는데.
<글/ 조영석 부천대 교양학부 교수 uncle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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