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레드라인(Redline)’이 기가 막혀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9-06 17: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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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북한의 경악할 6차 핵실험 강행 이튿날 국회 본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연설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추 대표의 연설은 대다수 국민정서와 동떨어질 뿐만 아니라 북한도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최고의 응징’과도 거리가 멀다. 그는 북한과 미국에 동시에 특사를 파견하자는 제안과 함께 설익은 ‘한반도 신세대평화론’을 늘어놓아 야당의 빈축을 샀다. 극한상황에 다다른 북핵 위기 앞에 국론의 사분오열만 덧내고 있다.
추 대표는 연설에서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양대 축으로 ‘격차 해소’와 ‘적폐청산’을 제시해 진보정권의 정책기조를 과시했다. 특히 지대추구(地代追求·rent-seeking)를 강력비판하고 초과다(超過多) 부동산에 대한 보유세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대추구란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 즉 로비·약탈·방어 등 경제력 낭비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추미애 대표 연설, 북한에 ‘대화’ 애걸복걸 이미지만 남겨
그러나 초미의 관심사인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펼친 주장들은 5천만 국민들이 핵 인질이 된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전혀 안 보이는 뜬금없는 헛발질이라는 비판을 모면키 어렵다. 이날 추 대표의 연설문에는 ‘대화’가 12번이나 등장한 반면 ‘규탄’은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아 ‘핵보유국’ 거드름 속에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들에게 애걸복걸하는 이미지만 남겼다. 도대체 집권여당 대표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허탈했다.
추 대표는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따른 안보위기와 관련, “북한과 미국에 동시 특사를 파견해 북미, 남북 간 투 트랙 대화를 추진할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고 밝혔다. 온 세계가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는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시점에 ‘대북특사’를 해결책이라고 입줄에 올리는 한가로운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상시대화 중인 동맹국 미국과 무슨 이야기를 더 하러 특사가 가야 하는 것인 지부터 짐작이 어렵다.
북핵 문제 패러다임,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 일치된 견해
추 대표가 이어서 내놓은 ‘한반도 신세대평화론’은 더욱 아리송하다. 그는 “우리의 미래세대와 북한의 장마당 세대가 중심이 될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대북정책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그리고는 “이제라도 김정은 위원장은 신세대적 사고와 각성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전향적 태도 변화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해 김정은을 장마당 세대로 분류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북한이 온 세계의 만류를 짓밟고 감행한 6차 핵실험은 핵탄두 소형화를 위한 최종 단계로 해석된다. 지난 5차 핵실험에서 실패한 증폭핵분열탄보다 한 단계 앞선 수소탄을 성공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위력도 역대 최대급이다. 세계의 핵무기 개발 역사에 비춰보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확보는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핵 문제는 이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북한, 핵무장 감행으로 이미 오래 전 레드라인 넘어
청와대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레드라인에 도달하기까지 아직 시간적·기술적 여유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참으로 의아스러운 대목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핵탄두의 경우 소형화, 경량화와 더불어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많은 부분이 필요하다”며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남아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이라는 기준에 맞춰보면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천리만리 떨어진 미국의 기준은 될지언정 대한민국의 규정이 될 수는 없다. 총부리를 맞대고 사는 우리에게 북한은 핵무장 감행으로 이미 오래 전에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북한의 ‘핵폭탄 양산단계 돌입’ 분석은 왜 굳이 외면하나
물론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나라 북한이 주장하는 ‘수소폭탄 완성’이나 ‘대륙간탄도탄(ICBM) 성공’ 주장을 액면그대로 믿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이 가진 핵폭탄 한 방이면 온 나라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는 판국에 그 미심쩍음을 이유로 안이한 판단을 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북한이 이미 핵폭탄 양산단계에 돌입할 태세가 돼 있다는 일부의 분석은 왜 굳이 외면하려고 드는가.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 그런데 그 전쟁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충분한 힘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 지금은 자체개발이든,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든 ‘핵무장’을 강고히 추구할 때다.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뭉쳐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뒷받침해야 한다. 국가안보를 놓고 더 이상 지지고 볶지 말아야 한다. 백척간두에 선 안보운명 앞에 더 이상 분열은 없어야 한다. 현명해야 하지만 결코 비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임진왜란 전 드잡이 당파싸움 비극의 역사 자꾸만 떠올라
추미애 대표의 때늦은 ‘대화’ 타령이나, 청와대의 강 건너 불구경 묘사하듯 하는 ‘아직 레드라인 안 넘었다’는 판단은 옳지 않다. 갈 데까지 간 핵위협에 맞서기 위해서 여야 정치권이 똘똘 뭉쳐도 시원찮을 판국에 청와대와 여당은 엉뚱하게도 정파적 갈등의 골만 깊게 파대고 있다. ‘레드라인’을 넘어 생사를 가르는 ‘데드라인(死線)’ 앞에 서 있는 한반도 온 겨레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결코 그렇게 한가롭고 느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진왜란 전 전란의 위험성을 놓고 두 패로 갈려 드잡이 당파싸움에 골몰했던 비극의 역사가 자꾸만 떠오른다. 임진왜란 발발 2년 전 풍신수길(豐臣秀吉)의 조선 침략의도를 살피기 위해 일본을 다녀온 서인 황윤길(黃允吉)과 동인 김성일(金誠一)은 당파이익을 앞세워 각기 다른 보고를 하는 바람에 전 국토가 왜군에 짓밟혀 피범벅이 되고 말았다. 멸망을 부르는 악몽의 시나리오들이 무수히 날아다니는 한반도의 민생들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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