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막다른 골목의 ‘개살구’들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8-31 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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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그러나 자영업자들을 현실적으로 위협하는 가장 큰 고통은 ‘빚 폭탄’이다. 지난해 자영업자가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이 우리나라 전체 가계부채의 절반을 넘는 수치인 732조원에 달한다. 이들 중 연체자는 모두 25만여 명으로 10명 중 1명은 빚을 갚지 못하고 연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의 올해 1/4분기 말 소득대비가계대출비율(LTI)이 355.9%에 달해 한국경제의 위험한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을 위협하는 가장 큰 고통은 ‘빚 폭탄’
전국적으로는 580만명에 육박하는 자영업자 중 84만명이 지난해 사업을 접었다. 반면 새롭게 진입한 자영업자는 110만여명이다. 이처럼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증가하는데도 새로 문을 여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창업자들 중 상당수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는 케이스다. ‘폐업과 창업’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허덕이다가 쓰러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정부가 확정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까지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올해 대비 16.4%나 급등한 7천530원의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은 자영업자의 전직 또는 폐업을 부추기는 최대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과도한 빚 부담 속에 창업을 했지만, 매출 감소에 따른 적자 폭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인건비 인상은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대출규모 실제 반영하는 통계는 사실상 없어
자영업자들의 위기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최근 한국신용정보원이 분석해 발표한 ‘개인사업자의 금융거래 현황과 주요특징’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사업자 약 258만8천200명이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 대출 잔액은 평균 2억3천800만원, 총액 약 615조9천9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중 자영업자 234만2천300여명은 약 116조6천500억여원의 가계대출을 중복으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자영업자가 보유한 전체 대출 잔액은 732조6천400억여원으로서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 1천344조원의 절반이 넘는 약 54%에 달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개인신용을 기반으로 가계대출만 받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욱 심각할 수 있다. 할부·지급보증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추산이 어려워 자영업자 대출 규모를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통계는 사실상 없다.
4050 조기퇴직자들의 창업 실패율이 무려 74%에 달해
자영업자의 경우 LTI는 지난 한 해 동안만 무려 24.7%p나 증가해 올해 1/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수준이 무려 소득의 3배를 훌쩍 넘긴 상황이라는 통계가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금리 상승기에 경기 부진까지 덮칠 경우 금융은 물론 경제 전반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말하자면 자영업자들의 자금난은 폭발시점이 임박한 시한폭탄 같은 상황이라는 얘기다.
사람마다 사연이 다르긴 하지만, 꽤 많은 자영업자들이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가 살아갈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조기퇴직을 한 경우도 적지 않다. 심각한 것은 조기퇴직자들 중 창업을 선택한 자영업자들의 성공비율이 지극히 낮다는 사실이다. 4050 조기퇴직자들의 창업 실패율이 무려 74%에 이르고, 이들의 40%가 계층추락을 경험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들의 사기피해액이 평균 1억5천만 원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는 끔찍하다.
뒤늦게 빚 탕감해주겠다는 정책이란 하지하책(下之下策)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고위험 차주와 영세 자영업자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일부 원금 상환을 유예해 이자만 부담하고 이 기간 정책상품으로 목돈을 마련해 원금을 갚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비롯한 정부의 대책을 주목한다. ‘모럴해저드’의 늪에 빠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면밀하고도 효과적인 대책이 긴급히 강구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응급수술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선진국가라면 평생을 모은 퇴직자산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서툴러서 왕창 까먹고, 사기꾼들에게 하루아침에 홀라당 털리고 마는 비극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죽어라고 취직이 안 돼 부모형제들 쌈짓돈 털고, 은행 빚 잔뜩 얻어 자영업을 시작했다가 가족들의 신망을 죄다 잃고 쓰러지는 젊은이가 있어서도 안 된다. 정부당국이 뒤늦게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선심이나 쓰는 정책이란 하지하책(下之下策)에 지나지 않는다.
사업 시작 전 실패를 피하는 법 가르쳐주는 시스템 작동돼야
‘물고기를 주지 말고 그물 짜는 법을 알려주라’는 금쪽같은 교훈이 있다.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실패를 피해나가는 법을 세세히 가르쳐주는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그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고서는 아예 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하게 하는 기술적인 장치가 마련되면 더 좋다. 예방주사를 의무화하는 것이 나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소 무리일 지라도, 나중에 치러야 할 경제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지극히 타당한 절차다.
하루하루 매상에 목을 거는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스스로에 대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자조적 수식을 서슴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생 월급보다도 못한 수입에 목을 매고 사는 처지에 ‘사장님’은 무슨 가당찮은 벼슬일까 보냐고 이죽대기도 한다. 오죽하면 저럴까, 형형색색 깃발 들고 붉은 머리띠 두르고 “김영란법 폐지하라! 근로시간 단축 중단하라!”고 외쳐대는 자영업자들의 악다구니가 안타깝다.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막다른 골목길의 ‘개살구’들이 한없이 애처로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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