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암탉’들의 복수
- 김영호 기자 | kyh3628@hanmail.net | 입력 2017-08-07 10: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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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유럽에서 논란이 된 피프로닐 성분이 국내 계란에서도 검출되면서 ‘살충제 계란’ 공포가 전국을 뒤덮었다. 피프로닐과 함께 또 다른 친환경 양계농장 계란에서는 닭 진드기 박멸용으로 사용되는 ‘비펜트린’ 성분이 사용량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모든 농장의 계란 출하를 금지하고 대형마트 판매까지 중단하면서 온 국민들이 먹거리 공포에 빠져든 상황에서 전국이 떠들썩하다.
‘정부 허술한 관리’.‘양계농 모럴해저드’ 함께 문제 일으켜
정부의 허술한 관리도 문제지만, 양계농가의 모럴해저드도 함께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은 문제 해소방안 마련과 구멍 뚫린 관리체계 개선을 놓고 연일 지지고 볶는다. 주부들은 냉장고에 사다 놓은 계란을 먹어야 옳은지 아닌지를 놓고 고민한다. 정부는 성인의 경우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을 하루에 126개씩 먹어도 위험하지 않다는 발표를 내놨지만, 한국환경보건학회 등으로부터 ‘만성독성 영향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살충제 계란 파동에 일차적 책임을 물어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전·현직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들 사이에는 마치 로또복권 번호를 살피듯이 매일 신문에 추가 발표된 유독 계란 종류와 계란 껍데기에 새겨진 ‘난각코드’를 대조해 들여다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양계농민들이 망연자실해 있는 동안 계란을 사용한 모든 제품 관련업계도 매출 폭락에 죽을 맛이다.
피프로닐 기준치 설정 않고, 표본 검사만 실시해와 구멍
피프로닐은 가축의 벼룩이나 진드기를 없애는 살충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피프로닐을 다량 섭취하면 간장이나 신장 등 장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벌레의 중추신경계를 파괴하는 살충제로 다량 섭취할 경우 두통이나 감각 이상, 간 등 장기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펜트린은 원예용 살충제다. 발달독성시험에서 떨림증 등의 신경독성 영향이 관찰됐지만, 생식이나 유전독성은 없었다.
최근 벨기에·영국·독일 등 유럽 각국의 계란에서 피프로닐이 검출돼 수백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됐다. 개·고양이의 벼룩이나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쓰는 피프로닐은 닭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이미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장에서 생산된 부적합 계란 35만개가량이 빵이나 훈제계란 등으로 가공돼 시중에 판매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방역당국은 그 동안 피프로닐에 대한 기준치를 설정하지 않고, 표본 검사만을 실시해와 구멍이 뚫렸다.
농관원 퇴직자 재취업 민간인증업체 ‘친환경’ 인증 많아
온·오프라인에서 계란 판매가 일시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계란은 국민들의 식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은 식재료다. 계란을 사용하는 수많은 식품에 영향을 미치면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이 현실화되고 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온 나라가 뒤집힐 듯이 호들갑천지를 만들었다가 썰물처럼 잊어버리는 작태가 반복되고 있다.
소비자들을 어이없게 만드는 것은 친환경 생산방식을 채택한 농장 생산품에서조차 피프로닐이 검출됐다는 점이다. 살충제 계란 전수조사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인증 기준을 위반한 친환경 농가들에 적지 않은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출신 퇴직자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더 큰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농관원 출신 퇴직자가 재취업한 민간인증업체가 인증한 친환경 농가는 25개 농가로 전체의 6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택 여지없이 ‘선진국형 동물복지농장 방식’으로 전환해야
산란계는 많게는 9단까지 층층이 쌓인 철제 케이지에 구겨 넣어진 채 사육된다. 산란계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고작 A4 용지 2/3정도란다. 평생 한 번도 흙을 밟지 못하고 날개도 푸드덕거리지 못하는 철장 안에서 기계처럼 알만 뽑아내다가 생후 2년이 되기 전에 죽는다. 살아있는 동안이 죽는 것보다 못한 지옥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각종 화학약품에까지 노출되니 면역력이란 게 생길 수 없고, 조류독감ㆍ진드기를 이길 힘이 있을 리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선진국형 동물복지농장 방식으로의 일대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비용이 문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동물복지농장 제품은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계란보다 2배가량 비싸다. 이번 파동 전에는 전체 계란 유통물량의 약 1.5% 수준으로 추정된다. 먹거리에서조차 ‘빈부격차’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서민들은 좋은 식재료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게 생겼으니 서러운 노릇이다.
자연섭리를 거스르는 모든 인류 생태환경 샅샅이 점검해야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은 당국의 안일과 국민건강을 소홀히 여긴 양계농가의 도덕적 해이가 함께 빚어낸 소동이다. 유해식품이 절대 밥상에 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은 잠시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는 국가의 으뜸책무다. 식품업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잠시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하루속히 ‘유독성 계란’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당국과 양계업자들이 일심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소해야 할 것이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번영을 구가해온 인간에 대한 암탉들의 복수인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라면서 편안하게 낳은 계란을 먹어야 비로소 건강하다는, 인간에게 던지는 대자연의 날카로운 메시지일 수도 있다. 그 무수한 ‘잎싹’들의 “절대로 좋은 알을 낳지 않겠다”는 한 서린 결의가 빚어낸 처절한 반란임이 분명하다. 이 문제가 계란에만 국한돼 있다는 소아병적인 착각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는 모든 인위적인 인류 생태환경을 샅샅이 점검해보아야 할 위기가 닥쳐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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