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형 칼럼] 납세자의 갑질, 세정의 권위 실종인가?
- 세정기조 납세자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영혼없는 '서비스 세정' 세정품위 훼손
‘脫권위주의-세정권위’경계 무너지면
납세계도 난항 조세정의 구현도 요원 - 심재형 기자 | shim0040@naver.com | 입력 2023-08-02 12: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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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가 권위주의로 팽배했던 지난 시절, 납세자들은 세무서장실 문턱 넘기가 쉽지 않았다. 설령 문지방을 넘었다 해도 서장실 천정(天井)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나올 정도였다. 머리 조아리고 들어갔다가 허리 굽히고 방(房)을 나오니 천정 쳐다 볼 겨를이 없었음이다.
당시의 공직사회 권위주의를 비유한 말이지만 사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선서장들은 나름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들의 헛기침 한방에 직원과 납세자들은 알아서 기고(?) 일선조직 또한 일사불란하니 기관장 해 먹을 만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 세월이 가버린 요즘의 서장님들, 관내는커녕 서(署)내에서 조차 운신이 어려운 세상(稅上)을 살고 있다. 업무에 짓눌린 직원들의 심기를 외려 살펴야 한다.
그러자니 기관장을 비롯한 일선 관리자들의 품이 필요이상 들어간다. 기관장들은 직원들의 바닥 정서 살피기에 급급하다. 여기에 관내 납세자 동향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점잖은 납세자 층은 그렇다 치고, 간혹 다혈질 납세자의 돌출 행동에 대한 소방수 역할도 이들 몫이다. 이렇듯 세정환경 변화에 따른 각종 스트레스가 쌓여도 내색 한번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는 이들이 바로 관리자들이다. 또 일선직원들은 사정이 어떤가. 특히나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창구(窓口)업무 종사자들의 심적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른바 갑(甲)질하는 납세자들에게 시달린다. 시대가 변한 것인가, 세정의 권위 실종인가.
최근 어느 일선세무관서 민원팀장이 민원인을 응대하다가 의식을 잃고 실신했다는 사실이 전해져 세정가에 충격을 주고 있다. 곧바로 응급처치를 받고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의식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그동안 속앓이를 해왔던 일선직원들은 진즉에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 라는 표현까지 불사하며 갑질 하는 민원사례는 식상할 정도로 만연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일선공무원들이 겪는 악성 민원의 수위가 해마다 높아 가는데 반해 국세당국 차원의 대응책이 너무 안이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언제부턴가, 권위주의 세정 탈피에 역점을 둔 국세행정 기조가 가동되면서 ‘서비스 세정’을 너무나 강조하다보니, 脫권위주의와 세정품격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일선공무원들도 진정한 ‘서비스 세정’의 개념조차 모른 체, 영혼 없는 납세자 응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윗선에서는 민원인에 대한 서비스를 최상위 덕목으로 상정, 친절하고 고마운 자세를 견지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정의 권위는 물론 품격마저 행방불명이다. 그러자니 납세자들 눈에는 국세공무원들이 유흥업소 종사원쯤으로 뵐지도 모른다. 여기에 국세행정 수장님들, 틈만 나면 납세자 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때론 지역 산업단지에서 또는 전통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즉석 세정지원 간담회를 이끈다. 하지만 국세당국과 납세자와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 했듯이 국세행정 수장이라면 가급적 후방에 위치해 납세권(圈)을 예의 조망하면서 여차 싶을 때 정책적인 결단을 내리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가까이 보다는 멀리서 봐야 잘 보인다, 그래야 납세국민 앞에 ‘당당하고도 강한 국세청’을 각인 시킬 수 있다.
국세행정 수장이 몸소 챙기는 만기친람은 조직의 동력을 떨어뜨린다. 국세행정에 대한 납세자의 신뢰와 권위는 국세청 수뇌부가 아닌, 일선세정이 좌우한다는 세정가의 평범한 진리를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역대 국세청장들은 임기 중 저마다 독특한 ‘세정 컨셉’을 내걸고 세정 이미지 개선에 열을 올렸다. ‘공평과세 구현’ ‘합리세정 구현’과 같은 원론적 세정 컨셉을 대외에 표방하는가 하면, 납세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듯한 ‘따뜻한 세정 구현’이라는 케치프레이즈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세행정은 굳이 차갑거나 따뜻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납세자 기본권을 중시해 주면서 억울한 납세자가 없도록 ‘공평 과세’를 이룩해 주는 것이 납세국민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서비스 세정’이 아닌가 싶다. 세무행정은 분식(粉飾)이 아닌, 정도(正道)를 지향할 때 신뢰와 권위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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