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곡목(曲木)’ 천지가 기가 막혀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6-14 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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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이 고사성어는 인재를 골라 쓸 때 맨 처음에 ‘곧은 인물(直木)’을 발탁하지 않으면 갈수록 굽은 인물을 써야 하기 때문에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만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새 정부가 동량(棟樑)들을 골라내어 자리를 찾아주는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드도 맞아야 하고, 안배도 생각해야 하는데다가 무엇보다도 국회에서 치러지는 혹독한 ‘까발리기’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니 가히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일만큼 난제다.
순식간에 ‘정반대’로 입장 뒤집는 정치인들 기이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릴 적마다 일어나는 장면들은 번번이 기시감(旣視感)으로 다가온다. 문자 그대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의식이 춤을 추면서 똑같은 무늬가 반복되는 데칼코마니처럼 지루하고 짜증이 난다. 국회에서 시작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공수(攻守)의 위치만 정확하게 바뀌었을 뿐이었다.
19대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벌어지는 인사청문회는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를 향해 무지막지 말 폭탄을 퍼붓던 더불어민주당 청문위원들은 후보자 두둔에 몰두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반면 여당에서 야당으로 위치가 바뀐 청문위원들은 후보자들의 약점을 물어뜯기 위해 전전긍긍이다. 너무나 뻔한 패턴이고, 단조로운 역전극이다. 말과 태도를 순식간에 정반대로 뒤집는 정치인들의 재주가 참 기이하다.
야당은 ‘폭소’, 여당은 ‘머쓱한 표정’…씁쓸하기 그지없어
무엇보다도 국민을 질리게 하는 것은 청문회 내내 청문위원과 공직후보자 간에 오가는 문답의 주제가 위장전입이니, 부동산 투기니, 세금탈루니, 논문표절이니 하며 지난 삶의 찌꺼기들을 놓고 벌이는 입씨름뿐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도덕성 검증은 중요하다. 도덕성이야말로 고위 공직자의 핵심 덕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밑도 끝도 없는 티 뜯기와 감싸기만 벌이다가 막을 내리는 청문 행태다.
박근혜 정부 시절 7명이나 낙마시켰던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이 던진 한 마디는 오늘날 국회 인사청문회가 얼마나 유치한 희극인지를 상징한다. 홍 의원은 “여당의원님들은 옛날에 전부 호랑이 같으시더니 지금 전부 고양이가 되셨다. 치어리더 역할을 하시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빈정거렸다. 야당 의원들은 폭소하고 여당의원들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지만 씁쓸하기 그지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고위공직자 지명 ‘사전협의’하는 미국의 경우 주목해야
고위공직 후보자를 불러다 놓고 쓰레기통 검사만 하고 ‘직무능력 검증’이라고는 도무지 안 하는 인사청문회는 개혁돼야 한다. 국민은 이번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김이수 후보자가 헌재소장을 맡을만한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국내외적으로 처한 엄중한 국가적 난제들을 타개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감을 잡아내지 못했다.
직무능력만 검증하는 시간을 따로 잡더라도 이 문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백악관은 물론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이 총동원돼 233개 항목에 대해 2주간 먼저 후보자를 검증한 다음 청문요청을 하는 제도를 가진 미국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지명에 앞서 의회지도자 등과 ‘사전협의’를 실시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회의원 입각, 전문성 검증 생략 ‘나라 말아먹을 일’
새 정권이 탄생할 적마다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문고리 인사’, ‘회전문 인사’가 대표적이다. 정권의 인사에는 학연, 지연을 넘어 종교연까지 동원된다. 선거 때만 되면 교육과 연구는 팽개치고 캠프 주변을 어른거리는 교수들이 수두룩하다. 인사 청문 대상자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인사권자와 가깝게 됐는가가 더 궁금한 한심한 세상이 됐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국회의원들이 후보자로 지명될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가 솜방망이 청문회로 바뀌는 것도 희한한 현상이다. 선거에서 충분히 담금질을 당했으니 검증이 충분하다는 이유를 달지만, ‘전문성’ 부분에 대한 검증마저 생략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국회의원들이 천박한 ‘이익집단’식 나눠먹기 행태를 벌이는 것은 그야말로 ‘나라 말아먹을 일’에 다름 아니다. 적어도 국회가 그렇게 시정잡배들처럼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정부여당, 야당시절 무지막지했던 ‘몽니 짓’부터 반성해야
정부여당이 인사청문회에서 까칠하게 구는 야당을 질타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야당시절 문자 그대로 무지막지했던 인사청문회 ‘몽니 짓’을 진솔하게 반성하는 절차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칼들 비겁하게 꽁꽁 감춰놓고 야당의 검증공세를 힐난하는 것은 정치개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릇된 과거부터 신실히 털어놓고, 정치를 선진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개선책들을 내놓아야 맞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스포츠 선수를 뽑으면서 신체검사만 잠깐 하고 마는 격인 인사청문회는 이제 확 바뀌어야 한다. 본격화되고 있는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부터 모범적인 ‘정책검증’의 싹수를 보여주길 고대한다. 그나마나, 이 나라에서 이토록 기본을 제대로 지키며 살아온 직목(直木) 하나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현실이 착잡하기 짝이 없다. 온통 굽은 나무(曲木) 천지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처지에 기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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