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조폭 마누라’는 없다
-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9-13 18: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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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前 한국기자협회장가위 하나로 주먹계를 평정한 조폭 여두목 이야기를 다룬 ‘조폭 마누라’의 흥행은 실로 대단했다. 지난 2001년 조진규 감독 데뷔작으로 개봉된 이 영화는 한국영화 사상 최단기간인 5일 만에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주인공 차은진(신은경)은 고아원에서 헤어진 후 가까스로 찾아낸 언니가 위암 말기 환자라는 소식을 듣고 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동사무소 말단직원인 수일(박상면)과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차은진은 또 다른 조폭 백상어(장세진)파와의 세력다툼에 여념이 없다. 평범한 남자와의 결혼 이야기가 별미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처절한 결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끔찍한 조폭영화가 한 시대를 풍미하던 시절에 여자를 두목으로 등장시킨 것 자체가 색다른 흥밋거리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조폭 마누라’는 이후에도 두 편이나 시리즈가 더 나왔다.
여중고생들의 흉포한 집단폭행 사건 긴급한 사회문제로 부각
부산여중생 폭행사건 발생을 계기로 여중고생들의 흉포한 집단폭행 사건이 잇달아 폭로되면서 긴급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또래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해 피투성이가 된 10대 부산 여중생의 모습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처참했다. 두 달 만에 세상에 알려진 강릉 10대 여고생들의 집단 폭행사건도 잔인함의 정도가 부산사건과 판박이다. 악마적 범죄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사회의 고민이 깊다.
부산 폭행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의 모습은 쇠파이프, 소주병 등으로 구타당해 찢겨진 머리, 퉁퉁 부은 얼굴, 담뱃불 자국 등 실로 끔찍했다. 도저히 10대 여학생들이 저지른 폭력이라고 믿기 어려운 참혹한 몰골이었다. 잔혹하고 흉악하기가 성인 범죄보다 더하다. 더욱 기가 막히는 대목은 부산과 강릉, 아산 사건 등 유사 폭행사건의 가해자들 대부분이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죄책감조차 없다는 점이다.
피투성이 피해자 사진, 폭행 장면 동영상 자랑삼아 퍼뜨려
가해 학생들은 피투성이가 된 피해자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거나, 폭행 장면 동영상을 자랑삼아 퍼뜨렸다. 이들이 범행 후 킬킬거리며 주고받은 문자들을 보면 악귀가 따로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도대체 어떤 사회적 환경적 요소들이 이 아이들을 악마로 만들었을까. 한창 푸른 꿈에 젖어 살아야 될 나이의 소녀들이 왜, 무슨 이유로 이렇게 폭력 영화장면을 능가하는 잔인한 폭행을 일삼는 사범으로 전락한 것일까.
관련법 개정 목소리가 먼저 터져 나오고 있다. 형법 9조는 만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형사미성년자로 분류해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만 받는다. 만 18세 미만으로 사형, 무기징역형에 해당할 경우에는 형량을 낮춰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특정강력범죄법은 미성년자의 살인죄에 최장 20년으로 형량을 제한하고 있다.
소녀들을 악마로 키우는 척박한 환경 결코 단순하지 않아
시대변화에 따라, 아이들의 심신발육상태가 확연하게 달라진 만큼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경감해주고 있는 법을 개정하는 조치는 불가피할 것이다. 가벼운 범죄에 대해서 벌을 낮춰주는 것은 몰라도 최근의 사례처럼 성인 흉악범들도 잘 저지르지 않는 극악한 폭행 같은 범죄만큼은 엄벌로 다스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대증적인 방지책만으로 과연 이 같은 험악한 일들이 종식될 수 있을까.
꽃 같은 존재여야 할 소녀들을 악마로 키우고 있는 척박한 환경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아동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부모세대의 ‘무지’ 내지는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다. 자식들을 그저 잘 먹이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어른들이 수두룩하다.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습성에 길들여지고 있는지 제대로 살피지 않고 과보호에만 열중하는 어른들이 문제인 것이다.
아이들, 영상 속 ‘허상’과 ‘현실’ 구분능력 상실하기 십상
‘공동체의식’이라고는 전혀 훈육하지 않는 양육태도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경쟁체제 하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누군가를 이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구조에만 집착한다. 부모들이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인성교육이라고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 학교는 거대한 ‘입시학원’으로 변질돼 점수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남을 존중하고 스스로 존중받는 성숙한 휴머니즘 시민의식을 일깨워주는 시스템은 어느 것도 작동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무한정 노출되는 폭력 영상물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조직폭력배를 미화하는 영화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사이버 게임물 역시 부수고 베고 쏘고 터트리는 이야기 일색이다. 아이들은 영상 속의 ‘허상’과 ‘현실’에 대한 구분능력마저 상실하기 십상이다. 피투성이 부산 여중생 폭력 영상을 보고도 킬킬거리는 아이들은 그게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조차도 모른다. 세상에 ‘철없는 폭력’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없다.
형편없는 교육환경에 대한 전방위적 개혁조치 뒷받침돼야
아동들에 대한 부모세대의 무관심, 공동체의식이라고는 전혀 훈육하지 않는 양육태도, 인성교육에 무신경한 교육시스템, 청소년들에게 무한정 노출되는 폭력 영상물 문제 등 형편없는 교육환경에 대한 전방위적인 개혁조치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철없는 세대의 악마적 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이 폭행을 주도한 아이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만으로는 어림 턱도 없는 일이다. 비상한 마음으로 근본원인을 제거해야만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릴 때다. 현실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이 또래의 아이에게 철제의자를 휘두르는 소녀와, 함께 둘러서서 그 장면을 게임 구경하듯 즐기는 여학생들의 모습에서 미래사회의 ‘먹구름’을 읽는다. 따지고 보면 이 비극은 결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의 문제다. 어른들이 달라져야 한다. 현실세계에서는 절대로 ‘조폭 마누라’가 있을 수 없다는 진실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줘야 할 책임이 오롯이 어른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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