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형 칼럼] 겉치레 ‘세정 슬로건’ 이젠 그만…

‘밝은 세정’’명랑세정' 확립 등 지난날 국세행정 수장들의 세정 키워드
그 주제 가치가 제대로 구현됐다는데 동의할 납세국민 과연 얼마나 될까?
심재형 기자 | shim0040@naver.com | 입력 2024-01-15 09: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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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세행정의 핵심 슬로건은 따뜻한 세정이다. 김창기 국세청장은 새해 신년사를 통해 따뜻한 세정운영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최근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등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가 점차 회복되는 추세이나, 대내외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어 많은 납세자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따뜻한 세정으로 민생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 필요한 시기라고 역설했다. 소상공인과 기업이 다시금 활력을 찾도록 충분하고 시의적절한 세정지원에 최대 역점을 두겠으며 특히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에겐 따뜻한 세정의 온기가 필요한 곳에 고루 퍼질 수 있는 따뜻한 세정을 펼쳐 나가겠다고 연거푸 다짐했다. 참으로 훈훈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왠지 따뜻한 세정’ 슬로건이 낯이 익다. 취재 파일을 들춰 봤다. 다름 아닌 2006, 당시 국세청장이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납세계층에 대해서는 포용정책을 구사하겠다면서 따뜻한 세정운영을 대외에 공표했다.

 

역대 국세청장들은 임기 중 나름의 철학(?)이 담긴 독특한 슬로건을 내걸고 국세행정 이미지 관리에 공(功)을 들였다. 이낙선 초대 청장은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세정에서 친근감을 주는 세정으로 환골탈태한다는 굳은 의지로 본격적인 세정홍보에 불을 붙인 장본인이다. 국세청 여자 배구단을 창설, 국세행정 이미지 순화에 스포츠까지 동원했다. 특히나 납세자의 성실기장과 성실신고 유도를 위한 근거과세 구현을 대외에 표방, 국세행정의 ‘기본 틀을 세우려고 노력한 분이다. 뒤이은 후임 청장들도 밝은 세정‘ ’명랑세정’ ‘친절세정’ ‘합리세정’ ‘정도세정’ ‘열린 세정구현 등 다양한 슬로건을 앞 다퉈 내걸었다. 그 가운데 합리세정이나 근거과세 구현이라는 현안 과제엔 납세국민 모두가 관심을 표했지만, 명랑세정 같은 세정 구호는 외려 세정의 희학((戲謔)으로 풍자감이 되기도 했다. "세상(稅上?)에 명랑한 세정도 있다니…"  국세당국이 내걸었던 세정 슬로건에 납세권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다.

 

실인즉 국세행정은 굳이 차가울 필요도 없지만, 따뜻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는 생각이다. 태생적으로 따뜻함보다는 외려 차가움이 어울린다. 납세의식 제고와 관련, 납세자들에게 선의의 긴장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따뜻한세정보다는 따끔한세정이 제격이다. 낼만큼 세금 내겠다는 보편적 납세의식은 아직도 요원하기 그지없는데 너무 앞서 나가는 형이상학적 슬로건들이 판을 쳤다. 역대 청장들의 이 같은 행보는 납세자 권익보호를 우선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지만, 정작 납세자의 기본권을 중시했던 기억은 별로 나질 않는다. 때문인지 지난날 수 없이 내걸었던 세정 슬로건은 겉치레에 행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국세당국이 내걸었던 주제(主題)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는데 동의할 납세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깊이 성찰해 봐야 할 대목이다.

 

이처럼 명멸(明滅)했던 세정 슬로건중 하나를 꼽으라면 12대 국세청장의 '정도세정(正道稅政)'이 단연 돋보인다. 정당한 도리, 올바른 길을 걷겠다는 함축성 있는 의미부터가 납세자들의 마음을 끌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정도세정 구현을 내세우며 제2의 개청을 선언한다. ‘국세청이라는 간판만 빼고 모든 것을 바꿔 놓겠다는 이른바 국세행정의 일대 개혁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그는 개혁 시발부터 조세정의 구현을 강도 높게 외쳤다. 국세공무원들에겐 조세정의를 실현시키는 기술자가 돼 보자고 호소하면서 그동안 성역(?)으로 인식돼온 언론계에 세무조사의 칼을 빼 들었다. 누가 봐도 고독한 결단에 용기있는 결행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언론사에 대한 무차별 세무조사로 대표되는 첫 작품은 그 평가가 엇갈린 가운데 총체적인 조세정의 실현 작업 역시도 지지부진하게 끝을 내고 만다. 세정가 사람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국세청장의 결행이 조세정의 보다는 시대상황에 더 민감(?)했던 흔적이 엿 보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정치논리에 국세행정이 동원됐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국세행정의 최선의 길은 납세자의 기본권을 중시하면서 억울한 납세자가 없도록 공평 과세를 이뤄 주는 것이다. 납세자들은 자기한테 나온 세금이 '많고 적음'보다는 이웃집에 비해 과()하다고 여겨질 때 울화가 치민다. 이때부터 세금에 대한 불만이 싹 튼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이다. 공평과세는 곧 국세행정의 생명이라는 등식도 이래서 성립되는 것이다. 국세행정이 가야 할 진정한 종착지는 공평과세 실현임을 모를 리 없지만 '그 길'은 간단치가 않다. 하지만  따뜻함과 차가움의 흐릿한 경계선에서 국세행정이 꼭 이뤄내야 할 소명이요, 납세국민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소망이기도 하다. 시대에 뒤쳐진 겉치레 세정 슬로건’은 이제 아듀를 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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