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형 칼럼] 국세당국의 새해 청사진 ‘공수표’ 안 되려면
- 돋보이는‘납세자권익 위한 혁신적 재설계’
겉치레로 끝내면 국세행정 신뢰만 잃어
세정현장 지휘 감독하는 결제라인 사람들
보신(保身)아닌 소신으로 稅心 잘 읽어야 - 심재형 기자 | shim0040@naver.com | 입력 2022-02-04 06: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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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대외에 공표한 ‘2022년 국세행정 핵심 추진과제’는 한마디로 ‘납세자 살맛나는 세상(稅上)’ 만들기다. ‘납세자가 중심이 되는 서비스세정 고도화’를 위해 디지털 기반 납세환경 구축으로 보다 수준 높은 납세서비스를 제공하고, 참여와 소통 확대를 통해 납세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납세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야심찬 내용을 담고 있다. 납세자 권익보호라는 세정의 기본방향에 보다 충실하겠다는 다짐이 엿보인다.
그 가운데 크게 돋보이는 대목은 ‘더욱 두터운 납세자 권익보호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납세자에 대한 공약(公約)이다. 이를 위해 여러 장치를 신설 또는 개선하는 등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다. 납세자보호위원회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고, 지방청・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의 세무조사에 대한 감독・견제 기능을 제고하겠다는 구상이다.
과연 국세당국의 설계대로 우리네 납세자들 꽃가마 타는 시대가 머지않은 것일까. 이에 대한 납세권(納稅圈)의 반응은 대체로 무덤덤하다. 국세당국의 야심찬 구상에 굳이 재 뿌릴 필요 있겠냐만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세정가 조세전문가들도 반신반의(半信半疑)속에 조심스런 조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선 세정현장에서 납세자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세무대리인들의 고언(苦言)에는 국세당국자들이 접할 수 없는 리얼한 세심(稅心)이 담겨 있다. 이들의 충언에 귀를 기우려보자.
국세당국과 납세자간 권익침해 여부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접점이 바로 과세 전단계인, ‘세무조사 현장’ 또는 부과처분 후 납세자가 이에 불복, ‘심사청구’를 하는 경우로 요약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조사공무원의 불통으로 납세자들의 논리 정연한 주장들이 기를 못 펴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얘기다. 특히나 중시해야 할 ‘세무조사 절차’ 같은 기본수칙이 무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상층부에서 “성냥개비를 그리면 조사현장에선 야구방방이로 변신한다”는 우스겟 소리도 들린다. 당국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납세자 권익이 자주 실종되고 있다. 이렇듯 국세청 수뇌부 의지와 일선 현장과는 상당한 온도차가 상존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걸가.
여기에는 국세행정 수행과정에서의 단위 기관별 관리자들의 소신 결여가 주인(主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단계에서 과세처분 유지의 적정성 여부를 놓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할 관리자들이 예민한 사안에는 몸을 너무 사린다는 전언이다. 나름의 논리를 피력하다가 공연한 오해를 불러드릴세라, 소신(所信)대신 보신(保身)을 택한다는 얘기다. 좀 과하게 표현하자면 중간 ‘리더’층의 역할 실종이다. 그런 관리자들이 그 자리에 있는 한, 야심찬 국세당국의 청사진도 빛을 잃는다. 납세자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는 세정이 구현되려면 우선적으로 납세자를 대하는 국세당국의 집안 인식부터 순화되어야 한다.
현재 국세청 ‘납세자보호관실’도 국세청장 휘하에 존치돼 있어 ‘독립성(?)’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무리다. 때론 납세자보호위원회의 일부 위원은 의견진술을 위해 출두한 납세자나 대리인을 공격하며 국세청 입장을 과도하게 옹호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그를 가리켜 납보관이 아닌, 국보관(국세청장 보호관)이라 비아냥거리고 있다. 애당초 조직체계가 잘 못 설계되었다는 지적도 이래서 나온다. 열 명의 탈세범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납세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가 묻어나야 진정한 ‘납세자보호관’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세정가에 회자됐던 오랜 전설이 떠오른다. 1974년 설립된 국세심판소 황하주 초대소장의 얘기다. 당시 국세심판소(현 조세심판원)는 국세청 심사청구제도와 별도로 과세관청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재부부<현 기획재정부> 예속)으로 탄생했다지만, 국무총리실 산하로 격상된 오늘의 조세심판원에 비해 운신의 폭이 퍽이나 좁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황하주 초대소장은 실무파트에서 올라온 결재서류 가운데 인용(認容)분은 거들떠보지 않고, 기각(棄却)분만을 유심히 살핀 분으로 유명하다. 열사람의 탈세자를 놓지는 한이 있어도 한사람의 억울한 납세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투철한 소신의 소유자였다. 지금 납세국민들은 이런 관료들을 갈망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 납세국민들에겐 헌법과도 같은 ‘납세자 권리헌장’이 엄연히 살아 있다. 그런데도 세정 현장에선 납세자 불만의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국세당국이 마련한 새해 청사진도 이 같은 현실을 깊이 인식, 납세자권익보호를 한층 강조하기 위한 혁신적 실행지침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중간 관리자들이 현장 소리에 귀를 닫고 눈을 감는다면 이런 다짐도 공허한 공수표(空手票)로 끝날 공산이 다분하다. 공연히 세정불신만 가중시키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지금 납세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정을 정도(正道)로만 운영해 달라”는 소박한 바램이다. 국세당국자에게 ‘납세자권리헌장’의 1일 1독(讀)을 권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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