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정치실종(政治失踪)’ 주의보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07-06 11: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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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파리 에펠탑은 1889331일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제10회 만국박람회의 상징물로 준공됐다.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에 의해 탑의 건축설계도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프랑스 국민들과 지식인 예술가들은 철골구조인 에펠탑을 고철덩어리’·‘쓸모없고 흉측한 검은색 굴뚝’·‘파리예술의 모욕이라며 거칠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건립 당시 모진 수난을 겪어야 했던 에펠탑은 120여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를 훌쩍 뛰어넘어 유럽의 랜드마크로 등극해 있다. 이 탑은 오늘날 하루 평균 18천명, 1년에 7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돼있는, 명실 공히 프랑스 관광산업의 중추다. 지난 2012년 한 조사에서 에펠탑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4346억 유로(한화 약 600조원)로 평가됐다.

 

협치가 시대정신이라던 대의(大義), 어느새 실종돼

 

현대정치에서 숫자는 권력의 바로미터로 작동한다. 대중은 숫자의 마력에 취해 권력의 향방을 예단한다. 많은 숫자를 움켜쥔 사람들이 그 자체가 권력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믿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쉬이 빠져들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치인들의 숫자맹신현상을 주도하는 두 요인은 여론조사선거. 시시때때 나타나는 숫자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언행은 변화무쌍하다.

 

국회가 헛돌고 있다. 장관임명 강행 논란과 국민의당 문준용 의혹제보 조작사건이 뒤엉키면서 여야 정당들의 강대강(强對强) 대치 속에 인위적 정계개편음모론까지 불거지는 상황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잠시 불던 훈풍은 종적을 감췄다. 여야를 불문하고 협치가 시대정신이라던 대의(大義)는 어느새 실종됐다. 국민들의 눈길이야 아랑곳없이 무한 권력다툼에 함몰된 정치권 풍경이 해묵은 3류 영화처럼 뻔뻔스럽게 흘러간다.

 

일자리 정책옳고 그름 따져볼 기회조차 없는 현실 답답

 

국회에 접수된 지 한 달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는 일자리 추경안이 문제다. 민주당은 7월 국회에는 반드시 처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이 추경안과 인사청문회 등을 연계시키며 보이콧을 유지하고 있어 길이 막혀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임명에 반발하며 안보 사안 외의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해왔고, 국민의당도 문준용 의혹제보 조작국면에서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머리자르기발언에 격앙돼 살차게 토라진 상태다.

 

국회법 85조에 따르면 의장은 지정한 기일 내에 안건 심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본회의에 안건을 부의할 수 있다. 하지만, 전례가 없고 요건도 까다롭다.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의장이 함부로 쓸 수 있는 해법이 아니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볼 기회조차 없는 현실에 국민들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지금 결코 오만방자의 패덕(悖德) 답습할 때 아니다

 

여야 경색국면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정치현상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무차별 언행이다. 아직 전모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문준용씨 증거 조작사건은 일단 전적으로 국민의당 잘못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집권당의 대표가 대선 조작 게이트는 북풍 조작에 버금가는 것이라며 날을 세우고, “미필적 고의 의혹이 짙다며 형사책임론까지 거론하는 등 험구(險口)를 연일 쏟아내는 것은 품격부터 맞지 않는다.

 

특히 뚜렷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안철수·박지원 전 대표 연루설을 주장한 것은 정계개편 노림수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가혹한 칼질이다. 청와대나 총리실, 당 원내지도부 모두 추 대표가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푸념만 할 뿐 나서는 이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굳이 배경을 찾자면 80%를 넘나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떠오르지만 지금 결코 오만방자의 패덕(悖德)을 답습할 때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여론지지율’, 야당은 의석분포에 집착

 

아마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80%’라는 높은 숫자에 취해있는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50%’라는 숫자에 고무돼있을 것이다. 청와대의 80과 집권여당의 숫자가 50이라면, 야당은 자신들의 숫자를 20~50이라고 인정해야 맞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다. 자유한국당은 현실과 괴리가 존재하든 말든 의석수 107(의석비율 35.8%)이 자신의 숫자다. 국민의당 역시 의석수 40(의석비율 13.4%)을 부여잡고 있다.

 

야당은 문재인의 80, 민주당의 50을 허울뿐이라고 본다. 의석수로 따져서 민주당 숫자는 120, 자유한국당은 107이라고 생각한다. 여당 숫자를 묶어놓고 ()120 ()173이라고 의식하기도 한다. 결국 문 대통령은 여론지지율 80%의 숫자를, 야당은 합계 다수인 자신들의 의석분포에 집착하는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여당은 협조를 말하고, 야당은 협치를 외치는 동문서답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피폐한 민생 개선 위한 시급한 현안 더 이상 짓밟아서는 안 돼

 

참고자료에 불과한 여론조사로 주요 의사결정을 대체하는 것은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끈질긴 지적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여론조사의 수치변화에 청와대를 비롯한 여야 정당들이 종속되어가는 정치풍토는 비극이다.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현재적(現在的) 여론에 도취돼있는 대중의 정치의식에 끌려 다니는 것은 천박하다. 만약, 옛날에도 오늘날처럼 여론정치가 횡행했다면 프랑스 에펠탑이나 한국의 경부고속도로는 결코 탄생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권은 협치의 정신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 국민들의 피폐한 삶을 개선하기 위한 시급한 현안을 더 이상 정쟁의 희생물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와 여당이 먼저 겸허한 자세로 타협의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으로 읽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야당 또한 작금의 끈질긴 어깃장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냉정하게 되짚어보아야 할 시점이다. ‘정치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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