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낙하산’과 ‘개국공신’

편집국 | news@joseplus.com | 입력 2017-11-02 14:50:47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현대전쟁에서 낙하산부대의 역할은 막중하다. 하늘에서 마치 우박이 떨어지듯 내리꽂히는 특전공수부대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적진을 교란하고, 주요시설을 폭파하고, 요인을 제거하는 특수부대로서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이 기막힌 발명품 낙하산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중국의 역사서 사기에 따르면 중국 순()임금이 젊은 시절, 우산을 이용해 지붕에서 뛰어내렸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으나 석연치는 않다.

 

낙하산 기구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낙하산 설계도(設計圖) 비슷한 그림을 그려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여겨진다. 그는 낙하산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이를 현실에 옮기려고 한 첫 인물이다. 그러나 낙하산을 이용한 최초의 낙하는 1783년 우산 두 개를 들고 나무에서 뛰어내린 프랑스의 루이 르노르망(Lenormand)이 기록하고 있다. 물론 낙하산을 전투 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공공기관 과거 5년간 채용비리 전수조사, ‘중징계천명

 

정부의 공공기관 채용비리와의 전쟁 의지가 심상치 않다. 공공기관의 과거 5년간 채용비리를 전수조사하고 비리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천명했다. 조사 대상은 330개 공공기관 외에 지방공기업과 공직 유관 단체가 포함된다. 대략 1500여 개 기관이 해당한다. 부정한 방법 또는 편법으로 특정인을 채용했거나 청탁한 사람, 채용된 사람들이 모두 좌불안석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법무부 등 12개 관련부처 장관을 긴급 소집했다. 법무부는 채용비리에 대해 일선 지검에서 수사하되 대검 반부패부가 지휘하도록 할 방침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 직후 정부가 발 벗고 나선 형국이다. 관계부처 합동 채용비리 특별대책본부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설치하고 신고센터도 운영한단다. 비리 관련자는 모두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채용비리 부패사슬 시작점은 수장(首長)낙하산 인사

 

채용비리는 일상화한 관행처럼 굳어져 이제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공공기관은 민간기업보다 업무가 느슨한데다가 보수와 복지수준이 높아 청년 구직자들에게 선망의 직장이다. 그런 곳의 채용비리는 취업준비생들을 우롱하는 반사회적 범죄나 마찬가지다. 균등해야 할 기회마저 박탈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직장을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이 득실거리고, 불공정한 채용관행에 좌절하는 나라는 결코 좋은 나라가 아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먹이사슬, 부패사슬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그것은 수장부터 어느 날 권력과 정치의 연줄을 타고 느닷없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낙하산 인사관행에 있다. 경영책임자가 전문성과 전혀 관련 없이 권력자의 손가락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가 살아있는 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근절은 어렵다. 윗물이 맑지 않으면 아랫물을 맑게 할 수 없는 이치와 동일하다.

 

정부기관 요직, 소위 개국공신에게 주는 전리품처럼 인식돼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낙하산 인사의 역사는 유구하다. 간신정치에 찌들었던 조선시대에는 낙하산 인사가 통상적으로 자행됐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수군 요직에 번갈아 앉은 원균이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된다. 그는 1591년 전라좌수사에 임명됐다가 성과가 없어 탄핵됐지만 불과 1년 만에 경상우수사에 임명된다. 그가 얼마나 역량이 떨어지고 형편없는 인물이었는지, 나라를 말아먹은 장수였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낙하산 인사는 선거제도에 뿌리가 닿아있다. 정부기관의 요직은 선거전투에 공을 세운, 소위 개국공신이라는 이름의 인사들에게 내리는 일종의 전리품처럼 인식돼 있다. 선거 캠프에 참여하는 목적이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정권 창출 기여자, 총선 낙선자, 공천 낙마자 등이 가는 정피아의 몫과 퇴직공무원들이 차지하는 관피아의 몫, 이에 더해 이른 바 좋은 자들이 도맡아서 가는 자리가 적지 않다.

 

낙하산제거 위해 새 낙하산뿌리는 일, 깊이 생각해볼 문제

 

공공기관 채용비리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강원랜드의 요지경 실태를 빗댄 표현들이 가관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낙하산 부대’, ‘권력의 곳간’, ‘마이더스의 손…….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강원랜드는 20122013년 신규 직원 거의 대다수가 누군가의 청탁으로 채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여파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기관만도 1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어디까지 뻗칠 것인지 주목된다.

 

문재인정부는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정치권 출신이라고 배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으니 낙하산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지난 정권이 뿌려놓은 낙하산을 제거하기 위해서 새 낙하산을 뿌리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십중팔구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저질러지는 새로운 적폐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특정인 무임승차 현대판 음서제도온존, 결코 묵과 못할 구태

 

국정감사에서 고용세습이 자행되고 있는 공기업의 수가 무려 65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사망 등의 사유로 자리가 비게 될 경우, 어떤 대기업처럼 고용세습을 명시하고 있는 단체협약에 따라 그 일자리를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채용과정에서 순위를 조정한다는 자백도 있었다. 가스안전공사는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드러난 합격자 순위조정 의혹에 대해 공사의 관례라고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일자리 절벽현상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청년 실업률은 9.2%, 체감 실업률은 무려 21.5%이다. 힘 있고 있는 지원자가 무임승차하는 현대판 음서제도의 온존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구태다. 기관장 임명에서부터 타당성과 공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공공.민간을 가릴 것 없이, 윗물에서부터 아랫물까지 엄정한 룰에 의해 인사가 이뤄지는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도 그렇게 할 때가 됐다

[저작권자ⓒ 조세플러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naver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편집국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카드뉴스CARD NEWS